언제까지 받아줘야 할까?
자식들은 이기적이다.
그건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발달의 본질에 가깝다.
아이와 청소년, 심지어 성인이 된 자식까지도
세상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보게 되어 있다.
그래야 살아남고, 분리되고, 자기 인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이
부모의 입장에서는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는 데 있다.
부모는
참아 왔고, 미뤄 왔고, 내려놓아 왔다.
그런데 자식은
참지 않고, 미루지 않고, 내려놓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자기감정을 그대로 쏟는다.
그 순간 부모는 이렇게 느낀다.
“이 아이의 세계에는 나는 없구나.”
그 감정은 잘못이 아니다.
그건 부모 역할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다.
“내가 왜 이 자식을 낳았을까”라는 말은
자식을 부정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더 이상 소진시키고 싶지 않다는 절규에 가깝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하자면,
자식이 부모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가 만만해서가 아니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 확신은 사랑의 부산물이고,
동시에 부모를 가장 아프게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건
더 참는 것도, 더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건 거리와 경계다.
부모도 감정이 있고,
부모도 존중받아야 하며,
부모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설명이나 훈계가 아니라
태도의 변화로.
그리고 이것도 꼭 말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고 해서
그 부모가 실패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건
부모 역할과 자기 자신 사이에서
정직하게 충돌하고 있다는 증거다.
자식은 언젠가 안다.
지금은 몰라도,
부모가 말없이 감당했던 무게를
자기 삶에서 비슷한 순간이 왔을 때
비로소 이해한다.
그때까지 모를 수도 있다.
그 가능성도 포함해서
부모라는 역할은 잔인하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좋은 부모”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먼저
덜 무너지는 인간이 되는 게 중요하다.
당신이 지친 건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사랑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