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현 Jun 07. 2023

이 상실에는 반댈세..

영화, <클로즈>를 보고 주절주절

《스포일러 있음》

아무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 영화 포스터 속 소녀인지 미소년인지 구분이 힘든 예쁜 얼굴의 주인공이 눈에 띈다. 영화가 시작되면 포스터의 주인공이 '미소년'이라는 정보를 얻고 막 청소년 초입에 들어간 두 남자아이의 우정이야기가 펼쳐질 것이 예상다. 중학교에 입학한 레오와 레미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처럼 꼭 붙어 지낸 단짝 친구다. 서로의 집에 격의 없이 드나들고 매 순간을 공유하며 두 사람이 한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가깝다. 아동기를 거치고 세상을 어느 정도 배워가며 고정관념도 생겨나기 시작하는 열세네 살 무렵이 되면, 두 사람의 가까움이 서로를 공격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동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아이들이 고정관념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마냥 지켜보거나 방관하지만은 않는다.  소수자, 성차별, 여성혐오가 묻어있는 아이들의 장난에 주변 모두가 동조하지 않으며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바른 소리' 하는 친구들이 나온다. 그런 점이 영화를 안심하고 보게 만든다.

 그런 영화의 다정함에도 불구하고 레오와 레미가 또래의 다른 남자아이들보다 특별히 더 친밀감 있는 모습은 짓궂은 아이들에게 금방 놀림거리가 된다. 레오는 레미와의 친밀감이 세상의 '질서'에서 튀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고정관념의 대열에 서려고 한다. '계집애'같다는 놀림을 피하려 아이스하키를 배우거나 축구를 하면서 또래집단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 레미는 레오보다도 조금 더 천진한 아이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레오가 자신을 밀쳐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나이 때의 아이들은 감정 조절에도 미숙하고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레미는 레오와 몸싸움을 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슬픔과 분노를 발산한다. 두 아이의 우정은 풍랑에 부서지는 조각배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어느 날, 레미는 학교의 야외 수업날 결석을 하게 된다. 레오는 레미의 부재가 신경 쓰인다. 야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다. 레오는 금세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불안함의 기운은 빗나감 없이 현실이 된다. 레오는 레미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됨을 알게 되고 레오는 레미의 집까지 무작정 뛰어간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화는 갑자기 우정 서사에서 상실의 서사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 서사는 어린아이들이 겪기에 너무 큰 비극이 아닌가. 나는 감독이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레오는 친구를 밀어냈다는 죄책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의 시간들을 어떻게 통과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중학교 1학년이지 않은가. 과한 설정에 비해 담백한(?) 연출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 단짝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내내 붙어 다녔다. 손도 잡고 팔짱도 끼고 한 이불을 덮고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잤다. 영화 초반에 여자애들이 레오와 레미를 '커플'이냐고 물어보거나 놀릴 때 레오는 '너희들도 꼭 붙어있잖아. 왜 우리만 놀려?'라고 묻는다. 남자아이들이 사춘기 초입에 들어가며 남성성을 요구받는 것이 남자아이들에게도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단짝과 붙어 다니며 '레즈비언'이라는 놀림을 받지 않은 것은 여성성이 방패가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가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참고하면 아이들이 가부장제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응하는 정치적 올바름, pc 함을 교육받았음이 영화에 공기처럼 깔려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은 다수가 아닌 것, 평범하지 않은 것에 불안감과 거부감을 먼저 느낀다. 게다가 학교라는 단체생활에서는 '특별함'이라는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레오가 레미를 빠르게 밀쳐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두 남자아이의 우정을 너무 빨리 정의하게 만들었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명령이 두 아이의 삶을 비극으로 몰았다.

 나는 <클로즈>라는 영화 속 세상은 다정하지만 주인공의 이야기는 과하게 비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천사 같은 두 아이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며 서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한번에 좌절되어 사라지게 된다는것이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설정이 아닌가. 바꿔서 말하면 너무 간단하게 비극으로 만든것은 아닌가?  물론 영화는 어떤 비극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관객도 비극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다. 감독님, 꼭 그래야만 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