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현 Jun 09. 2021

어떤 대화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가에 가기로 했다.

우리 시어머님은 뷰티제품 방문판매일을 하시는데, 시가에 가기 전에 필요한 제품이 생기면 내가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한다. 주로 애들 로션이나 내 화장품을 산다. 건강보조제도 판매하시는데 그건 너무 고가라서 선뜻 잘 사지는 못했다. 남편 월급으로는 무리라는 것도 잘 아신다. 화장품은 항상 정가로 구매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자신 때문에 내가 다른 제품을 살 기회도 없겠다고 미안해하신다. 그런데 나는 원래 화장품을 사는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정확히는 관심이 사라져서) 오히려 정해진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구매액에 비해서 훨씬 많은 양의 샘플이나 테스터제품을 챙겨주셔서 오히려 내가 어머님 영업에서 마이너스가 아닐까 걱정이었다.


  이번에 어머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려고 한 제품은 처음으로 화장품이 아니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체지방 감소에 효과 있다는 보조제가 있다. 둘째를 출산하고 10키로가 쪘는데, 시어머님은 한번도 내 외모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그런데 시부모님도 ‘자식 같으니까 하는말인데.. ‘ 하면서 얼마나 말을 하고싶으셨을까. 예를 들어 야식을 좀 줄이는게 어떻겠니? 혹은 운동을 좀 해보렴. 같은 말들. 게다가 시어머님은 채식주의자시고 바깥 음식을 싫어하셔서 외식 좋아하는 나의 식습관에는 가끔 잔소리를 하셨으니까.

 식습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이를 둘 키우면서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사를 하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언제나 변수가 많아서 내가 편안하게 식사 준비를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나의 게으름, 아니 게으름이라고 말하기 싫다. 아이들 반찬에 신경 쓰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자책하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백수보다 더 백수 취급을 받는 전업주부를 향한 이상한 멸시 같은 것이 세상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쓰려던 것이 이게 아닌데, 그만 흐름을 바꿔야겠다. 흥분할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나는 처음으로 체지방 감소 보조제를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주 전부터 피티 수업을 받고 있는데 왠지 보조제의 도움을 살짝 받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제품을 한번 구매해보겠다고 말했다. 어머님은 “ 살이  쪘나?” (경상도 사투리로)라고 말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 엄청 쪘잖아요. 얼마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거든요. 보조제 한번 먹어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시어머니에게 내가 내입으로 살이 쪘다는 말을 한 게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나의 몸뚱이에 대해 말하는데.. 시어머니한테는 그게 쉽지 않았다. 왜냐면 나의 불온한 식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실게 뻔하니까. 그리고 나의 식습관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고 내심 걱정을 하시니까(직접적인 말은 안 하셔도  느껴짐)

 내가 우리 어머님을 좋아하는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최대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잔소리)을 참으신다는 것이다. 위에서 잔소리한다고 써놓고 또 참는다니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정말 많이 참으신다.

어머님은 내가 내입으로 다이어트 보조제를 산다고 하니, 드디어 드디어 가슴속 깊이 묻어둔 그 잔소리를 할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셨다. 내 말이 끝나자마나, “그래 효과는 잘 모르겠는데,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더라. 3개월은 먹어야 된다데, 운동도 시작했다니 잘됐네”라고 하셨다. 어머님의 말은 여기서 끝나야 하는데 기어코,

니도  자식이다 아이가, 기분 나쁘게 듣지 ...”

“네? 아니에요 어머님 말하지마세요”

“응? 말하지 마까?

“네네네 하지마세요”

“오야, 내 말안하께”

휴... 막았다.

 

 내가 어머님을 좋아하는 두번째 이유다. 내가 듣고싶지 않은말을 듣고싶지 않다고 말을 잘라먹고 들어가도 금새 수긍 하시는것.

 그러니까 어떤 하고싶은 말은 끝내 참아 내야하고, 정말 듣기 싫은 말은 끝까지 막아 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부사이엔)

그렇게 서로의 거부권이 자연스레 쌓이면, 오히려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고, 서로의 상처를 요리조리 피해나가서, 생채기 내지 않고. ‘만들어진’ 가족의 얼굴을 부담없이 마주 할 수 있다. 그리고 보고싶어진다. 시간이 만들어낸 정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어진 서로를 향한 존중의 정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