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지현 Jun 18. 2021

키즈카페와 결혼식

 주전에  국립공원갔었다. 가족들과 밥을 먹고 더위를 식히려고 카페를 찾았다.   카페라니, 싱그러운 풀향기를 맡으며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족은 카페를 가지 못했다. 하필 들른 몇군데가 모두 노키즈존 카페였다. 모든것을 품어줄  같은 자연속에 노키즈존이라니 조금 안어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모든 카페가 노키즈존은 아니다. 그러니 미리 검색해보지 않은  잘못인걸까.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 때는 매우 긴장하게 된다. 혹시 우리 아이가 다른사람들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게 될까봐서. 그래서 아이가 조금만 잘못해도 평소보다 크게 화를 내게된다.

 그런데  나는 아이를 데리고 다닐때의 그 긴장감을 생각하다 갑자기 나의 결혼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 남편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시할아버지는 장애인이시다. 걷지 못하셔서 다른사람의 도움 없이는 쉽게 어디를 가지 못하신다. 불편한 몸 때문이셨을까. 할아버지는 손주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으셨다.

  어떤 ‘배려’의 마음은 정말, 천사의 얼굴을 띠고 있는 ‘분리’같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결혼식에 오지 않으셨던 이유는 다른 하객들을 위한 배려셨다. 그리고 아마, 사랑하는 손주의 빛나는 날에, 당신이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셨을테다. 나는 그때 왜 할아버지의 불참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까.  

 아마 내 마음속에서도 어떤 불편함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장애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곳에 있는것이 서로를 위해서 더 낫다고 생각하는 그런 못난 모습이 있었을것이다. 그래서 불참소식을 알고도 ‘아...그래?’ 라고 쉬이 수긍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약간 성격같기도하다. 이상하게 ‘배려심’이 많을 수록 이런 ‘분리’는 더 잦게 나타나는것같다. 할아버지는 우리 결혼식 말고 그 후 시동생의 결혼식도 참석하지 않으셨는데, 그때는 당신의 ‘불편한 몸’이 아니라 ‘늙음’을 앞세워 안오신다고 하셨다.


장애와 늙음은 분명 환영받을 만할 매력은 아니다. 함께 있으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래서 본인 스스로 타인과 멀어지려 하신다. 그런데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은 멀리서 볼때만 귀엽지, 같은 공간에 있을땐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뿐이다. 다만 아이들은 스스로 ‘멀어질 모른다.

 

 나는 노키즈존과 나의 결혼식을 생각하며 ‘뻔뻔함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아이를 데리고는 ‘키즈카페말고는  어디도 당당하게 다닐  없는 요즘같은 때에 말이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마음과 불편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아이들과 어른들을 분리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우리집 뒤에 장애인 복지시설이 있다. 그런데 나는 동네에서 장애인을 자주 본 적이 없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 없다. 그런데 당장 가까운 내 친척 중에 장애인이 있다.

 진정한 ‘배려 뭘까.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려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