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권리에 대해 생각하면서
작년 이맘때쯤 시사인에서 읽은 칼럼이 생각났다.
지역아동센터를 취재하고 쓴 칼럼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주변에서 몇 번 간판으로 본 것이 다였고, 정확하게 뭘 하는 곳인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그 칼럼을 보고 15년 전 봉사활동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두 달가량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한자 선생님을 한 적이 있다. (봉사정신이 투철하거나 아이들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좋아하던 남자애를 따라나선 것이었다.) 그 초등학교는 부산에서 꽤나 산동네에 있는 곳이었는데 지하철과 버스를 한 번씩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타야 갈 수 있었다. 아무튼 이주에 한번 그 학교에서 초등학교 3~4학년 정도의 어린이들과 한자 수업을 했다. 봉사활동을 주관하는 곳은 그 지역 아동센터였던 것 같고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유복하지는 않다고 들었었다. 15년 전 기억인데 그동안은 별로 떠오르지 않다가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첫째가 7살이 되자 신기하게도 생경하게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수영장? 교실에서 한자 수업하는 것 보다야 훨씬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아이들이 집에서 깨끗하게 씻지 못해서 수영장을 일부러 한달에 두어 번 데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이 그렇게 마음 아프게 들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기억이 선명해질 때마다 마음이 짠해진다.
다시 그 칼럼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칼럼은 코로나로 중단된 센터와 센터의 활동에 대한 내용이었다. 작년에 코로나로 가장 먼저 문을 닫은 곳은 학교, 도서관, 공공시설이었는데, 필자는 그곳이 가장 늦게 문을 닫아야 할 곳이었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첫째가 유치원을 두 달밖에 가지 않아서 나도 아이도 힘들었었다. 아마 육아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한 부모들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작년에는 전 세계인에게 방역이 최우선이었고 학교나 공공시설을 닫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었다.
지역아동센터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는 부모의 아이들이나 편부모,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 하교 후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가정환경이 괜찮은 아이들도 있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집은 부모가 밤 열한 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이 제대로 밥을 챙겨 먹지도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원격수업으로 대체된 학교생활 때문에 스마트폰이나 티브이로 시간을 때우느라 한창 소통하고 배워야 할 사회성을 키울 기회를 잃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부모의 케어가 가능한 아이들은 학교나 공공시설이 문을 닫아도 사교육, 또는 외부 체험활동 등을 통해서 코로나 이전과 비슷한 경험을 유지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가지 않을 때, 혹은 주말을 이용해서 한적한 공원이나 바닷가를 데리고 갔다. 코로나 확진자수가 줄어들었을 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단계 혹은 그 수준일 때는 실내 키즈카페도 가고, 외식도 했고 여행도 다녔다. 그렇다면, 나처럼 아이를 종일 케어하지 못하는 가정은? 혹은 사교육으로 커버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은?
아이들에게 코로나는 훨씬 더 큰 위협이고 제약이다. 7월 초쯤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 한 어린이집에서 물놀이터를 만들어 아이들을 놀게 한 적이 있었다. 폭염 속 물놀이는 아이들에게 유일한 외부 활동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공공시설 물놀이터는 거의 운영을 안 하거나, 취소되었다. 그래서 물놀이를 즐기려면 하루에 수십만 원이 드는 풀빌라나, 수만 원(안에 들어가서 놀려면 그것도 십만 원이 훌쩍 넘는) 짜리 입장료를 내는 워터파크를 가야 했다. 바닷가나 계곡은 맘먹고 가는 것이 아니면 가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주말이 아니면,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돈을 들여서 물놀이를 가는 가족이 아니면, 아이들은 올여름 어디서 물놀이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만든 그 물놀이터는 하루 만에 없어지게 되었다. 이유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코로나에 아이들 물놀이가 웬 말이 냔다. (그 당시 우리 지역은 거리두기 1단계였다) 물론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아이들에게 잔인할 정도로 방역활동을 협조시키는 어른들이 야속했다.
그리고 그 물놀이터를 만든 보육교사들의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 안타까웠다. 보육교사의 업무가 일반 직장인들의 업무만큼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만약 다른 행사였다면 그렇게 쉽게 취소될 수 있었을까.
(코로나 시국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아이들이 할 일이 ‘놀이’다. 특히 밖에서 ‘잘’ 노는 것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코로나 확진자가 별로 없던 7월 초에 쓰고 있었다.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이제 2학기 개학이 왔고, 매일 이천 명가량의 확진자가 나오지만, 작년과 달리 아이들은 모두 학교를 간다. 옳은 결정이다. 나는 학교 외에도 도서관이든 놀이터든 혹은 테마파크든 키즈카페든 아이들 공간은 언제나 열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자주 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아동센터나 기관에서 그런 아이들을 위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제공할 기회를 어떤 이유로든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신나게 논 경험들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라도록 만들어 주니까. 공평하게 다양한 노는 경험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경험의 기회는 열려있어야 하니까.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의 불안한 ‘놀’ 권리를 어른들이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