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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흰 May 07. 2021

007 심리상담

100일 글쓰기

최근 심리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인데, 세 가지 전공 중에 고민 중이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원격수업이 시작되면서 교육공학에 대한 관심이 늘어 교육공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나의 전공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 평소 좋아하던 영어교육학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고, 또 동시에 자살시도를 하면서 나와 비슷한 학생들을 상담하고 싶어 상담심리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참 다양한 관심사가 있어 어렵다고 느끼는 중이다. 사실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한 주된 이유는 내가 심리상담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치료는 오래전 시작했지만, 주로 약물 치료였기 때문에 상담이 주된 치료는 아니었다. 그러다 경찰이 연결해준 보건소의 자살예방센터를 찾게 되었고 현재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과 관련해서 이미 대학교 때나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다양한 이론이나 기법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그런 내용들이 직접 나에게 적용되니 굉장히 생소했다. 상담을 받으며 '아 지금 말씀하시는 방식이 그때 배운 그 내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은 적도 많았다. 이런 나를 잘 알고 계시는 상담자님께서는 "아는 건 다 아시는 분이 왜 이러세요~"라면서 농담을 던지시기도 한다.


대학 때 가장 흥미를 느꼈던 심리상담이론은 정신분석학이었다. 남근기 따위는 믿지 않지만,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들이 꿈에 반영되어 나타난다거나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믿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현대인과 정신건강'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가장 먼저 배웠던 이론이 정신분석학이었다. 아니 사실 모든 심리상담 이론의 시작은 정신분석학이긴 하다. 교수님의 사례와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나는 소름이 돋았다. '아 내가 이래서 이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 자신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는 정신과나 지금 상담을 받고 있는 센터나 모두 같은 말을 하신다. "OO 씨는 이미 너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계세요." 대학 때 워낙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어 나 자신을 탐구하다 보니 굳이 애써 들춰내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고 의지가 없어서 그렇지, 나는 내 문제를 직면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상담을 할 때 혼자 이런저런 이론을 대며 "제가 비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합리적인 신념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실패했어요"라는 말을 하곤 했다.


현대인과 정신건강 수업이 나 자신을 일깨우게 해 준 계기를 준 수업이라면, 교육심리 수업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수업이었다. 앞의 수업이 주로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교육심리 수업은 실제로 학생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론들을 배웠기 때문에 인간 중심 상담이론이나 형태주의 상담이론 등 실질적으로 내가 나 자신에게 활용할 수 있는 이론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또다시 내가 매료된 이론은 엘리스의 ABCD 이론이었다.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해야 한다는 인간 중심 상담이론은 나에겐 맞지 않았다. 과거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는 나에게 현재-여기를 주장하는 형태주의 상담이론 역시 나에게 맞지 않았다.


결국 자가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이론은 엘리스의 상담이론이었다. 한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비합리적인 신념 때문인데, 그 신념을 적절한 논박을 통해 합리적 신념을 통해 바꾸면 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나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사실 이 외에도 나에게 강박은 무수히 많다. 그래서 생긴 완벽주의이다) 완벽주의는 비합리적인 신념이다. 그러므로 논박을 통해 '완벽주의는 필요 없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더 이상 완벽주의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나 이론은 잘 알고 있지만, 그리고 나의 학생들에게도 너무나도 잘 적용했지만 정작 나에게는 잘 활용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제 와 겨우 조금씩 실천하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병휴직을 한 나는 웹툰 <바른연애 길잡이>의 바름이 다이어리를 사용하고 있다. 매일 할 일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가는 쾌감을 느끼고 있는데, 자살예방센터의 상담 선생님께서 나에게 과제를 내리셨다. "하루라도 미뤄보세요." 처음엔 그것이 너무 어려웠다. 모든 일이 체크되어야 완벽한 하루가 이루어지고 채워지는 건데, 그걸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결혼 준비로 바쁜 나는 이내 곧 조금씩 일을 미루기 시작했고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졌다, 이 완벽하지 않은 하루에.


심리상담을 배우는 것은 재밌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 적용하는 데에는 5년이 넘게 걸렸다. 어쩌면 상담을 하는 의사 선생님도 그럴지도 모른다. 내담자보다도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이비 스텝이라고, 적어도 이제 시작은 했으니까 거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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