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 주의 : 영화 <블랙 위도우>를 포함한 모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
지난 주 <블랙 위도우> 개봉일에 맞추어 영화를 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바로 나타샤의 생애였다. 왜 우리 나타샤는 내내 고생만 해야 하는지, 너무 속상했다. 나타샤 인생을 10가지로 간략하게 타임라인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로지 기억에 의해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아주 많은 부분이 빠졌을 수도 있다.
1. 나타샤는 가짜 가족 안에서 자랐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러시아 공작원으로, 가짜 부부였다.
2. 유년시절을 모두 레드룸에서 보냈다. 감정이 배제된 킬러로 길러졌다.
3. 레드룸에서 훈련 받는 동안 여성으로서의 생식 능력을 빼앗겼다. 이로 인해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다.
4. 레드룸에서 벗어나기 위해 드레이코프를 죽이는 과정에서 그의 딸도 함께 살해한다. 이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게 된다.
5. 절친인 호크아이가 변질되어 그를 되돌려놓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6. 헐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끝내 이어지지 않는다.
7. 그녀가 소속된 쉴드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그녀의 정체와 과거 역시 함께 폭로된다.
8. 그녀가 가족으로 여기는 동료들을 포함해 우주 생명 중 절반이 사라진다.
9. 타노스를 죽이기 위해 그를 찾아가지만, 이미 인피니티 스톤이 소멸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한다.
10. 우주의 운명을 되돌려놓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소울 스톤을 얻는다.
이렇게 간략하게 정리만 해도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어렸을 때부터 스파이로서 훈련 받았고 그 어떤 곳에도 정을 주지 못하다가 겨우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벤져스를 만났는데 10년 남짓 활동하고 희생을 택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이번 영화에서 나타샤가 좀 더 밝은, 행복한 삶을 살았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자신만의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기를 바랐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도 고생만 하다 갔다.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사이의 타임라인에 놓여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빌워>의 본편과 쿠키영상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 2~3주 남짓하는 기간동안 나타샤는 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레드룸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보는 내내 그녀가 안쓰러웠다. 왜 항상 나타샤만 이리 고생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의 끝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끝까지 자신의 목숨이 아닌 대의를 선택한 그녀였기에, 레드룸을 없애는 그녀의 의지와 선택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심 그녀가 로스 장군으로부터 도망다니는 2주 동안은 쉬기를 바랐는데 그녀는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어제 다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보았다. <인피니티 워>에서 가모라가 죽었을 때 그랬듯이 나는 또 다시 울어버렸다. 가모라 역시 힘든 삶을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잃었고 고향 사람들의 절반을 자신의 양아버지로부터 살해당했다. 그리고 줄곧 킬러로 길러졌다. 이내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 역시 참담한 결말을 맞이했다. 가모라와 나타샤, 모두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았는데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너무나도 아쉽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최애들은 왜 그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지 케빈 파이기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묻고 싶다.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