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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21. 2024

뷔 님께

< D - 311 >

V 님 

안녕하세요. BTS의 V 님~

춘천 2군단 사령부 직할 군사경찰단 특임대에 계신 그 V 님 맞습니다. 팬레터를 써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이 제 처음이자 마지막 활동이었으니, 30년도 더 되었네요. 


아들에게서 톡이 온 건 어제 아침이었습니다. 국군춘천병원으로 상병신체검사를 간 아들이 뜬금없이 이런 톡을 보내왔습니다. 

춘천병원에서 뷔 봐가지고
조심히 싸인 부탁했는데
죄송해요
이래서 못받았으

뒤이어 온 톡은,

너무 아쉬운데

였습니다. 


놀라운 얘기였습니다. BTS의 뷔를 만났다는 것도 놀라운 얘기지만, 아들이 연예인에게 말을 걸고 사인을 부탁했다는 것만큼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제 아들은 가오를 중시하는 데다 귀찮은 일은 절대 하지 않거든요. 아들의 호가 '굳이'라고 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까요? 제 아무리 뷔라 해도, 주변에서 사인 받으러 가자고 제안을 해도, "굳이?" 하며 꿈쩍도 안 할 것이 훤히 보이는 녀석인데 직접 싸인을 부탁했다니, 못 받았다고 아쉬웠다니요. 군대가 그를 바꿔놨을까요. 아니면 뷔매직일까요? 


조신하게 고백하자면, 저도 뷔님을 참 좋아합니다. 큰아들과 똑같이 군사경찰단 특임대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요. 흑복을 입고 찍은 뷔님의 사진을 보면 벌써 2년 전에 전역한 아들의 늠름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흑복에 매료돼 특임대에 자원했던 아들이죠. 하지만 뷔님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3년 전이었습니다.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OST < Christmas Tree >라는 곡을 처음 듣고 흠뻑 빠져 무한 반복 재생했었죠. 그윽하지만 느끼하지 않은 목소리, 미소년 같은 얼굴에 깊고 진한 눈, 잘생김을 넘어서는 기품. 큰아들을 군에 보내 허전했던 그 겨울이 조금은 따뜻했던 이유입니다. 


오늘 기준, 뷔님의 전역이 171 남았더군요. 6월 10일 제대라고... 아직 까마득하게 많이 남았다고 여기시겠지만 그래도 지난날이 남은 날보다 두 배나 많다는 건 큰 위로가 될 듯합니다. 제 둘째 아들도 2군단 예하 사단에 있어요. 자대배치를 받던 날 뷔님과 같은 군단이라는 얘기가 가족 톡방에 오갔죠. 공병여단에 갔다고 암울해하던 게 벌써 5개월 전이고 전역까지 311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첫 통화에서 엉엉 울었던 것, 공병이라 잔뜩 겁먹었던 군 생활이 생각보다 지낼만한 것,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수송에서 행정으로 보직 변경이 된 것, 계엄으로 아찔할 뻔했던 상황이 수습된 것 등 지난 200여 일의 시시콜콜한 추억 안에, 뷔님을 만나 사인을 부탁했던 장면도 들어가게 되었네요. 뷔님의 군 생활에는 어떤 장면들이 담겼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부모님께서는 얼마나 궁금해하고 걱정하셨을까요.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요.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뷔님의 노래를 내내 들으며 지내야겠습니다. 빌보드 'Holiday 100'에 세 곡의 크리스마스 곡을 올린 유일한 한국 가수가 됐고, ‘Christmas Tree’는 빌보드 스태프가 추천하는 ‘21세기 최고의 크리스마스 노래 25선’에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지만 그 때문은 아닙니다. 마침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아들의 휴가가 예정되어 있고, 그래서 마음이 폭신할 테고, 뷔를 만난 얘기를 자세히 해보라며 듣고 또 들을 때, 거실에 은은히 ‘Christmas Tree’가 깔렸으면 좋겠습니다. 


6개월 남짓한 군 생활,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히 무탈하게 부모님, 팬들에게로 돌아가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기꺼이 군에 지원하고 성실히 군복무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출처 : 네이트연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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