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숫자를 좋아하는 어른이 맞다

by 늘봄유정

⭕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1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 친구에 대해 말해주면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

Grown-ups like numbers. They never ask questions about what really matters. (어린 왕자, 4장)




숫자에 약하다.

내게 숫자는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수에 대한 감각, 사고능력의 문제다. 따라서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나는 숫자로 소통하는 어른의 세계에 길들여진 사람이 아니다'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수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고 셈에 빠른 사람이고 싶은데, 쉽지 않아서 애를 먹는다.


그러니 주식, 투자, 부동산 등의 얘기가 나오면 머리가 멍해지고 세상에 없는 바보가 된 기분이다. 공부해 보려고 영상도 틀어보고 남편이 읽던 책을 펼쳐본 적도 있지만, 귀에 들리지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 영어보다 수학점수가 한참 낮았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일부러 숫자를 외면한다.

오래전 <어린 왕자>를 읽었던 사람으로서,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 친구에 대해 말해주면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라는 구절에 담긴 의미를 아는 사람으로서, 의식적으로 숫자에 관한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마치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아는 어른인 척하는 것이다.


가령,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아들에게 숫자와 관련된 질문은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사귄 지 며칠 되었냐, 여자친구네 부모님은 몇 살이냐 같은 질문 대신, 여자친구의 어떤 점이 좋으냐,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 같은 걸 묻는다. 질문과 대답으로 숫자를 유추할 수 있는 질문까지 걸러낸다. 사는 곳이 어느 동네냐, 아파트 이름이 뭐냐, 아버지는 어느 회사에 다니시냐, 어머니도 일 하시냐 같은.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써 참는 것이다. 난, <어린 왕자>를 읽은 어른이니까.


집착하는 숫자는 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걸 넘어 집착하는 숫자는 있다.

아들들이 입대하는 순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확인했던 전역 날짜라든가 하루에도 두세 번씩 올라가 확인하며 일희일비하는 체중이 그것이다.


작은 아들의 전역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5일도 줄어드는 숫자를 매일 보고 또 볼 것이다.

9월부터 지속적으로 감소 추세이던 체중이 2주째 정체다. 매번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체중계에 오르기를, 언제까지고 반복할 것이다.


인정한다. 난 숫자를 좋아한다.

숫자에 약하지만 강해지고 싶고,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더 숫자를 생각하게 되는 나는,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맞다. 하지만 숫자'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숫자 너머를 향한 관심도 크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아들의 군생활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고난과 고민, 보람과 기쁨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줄어드는 숫자가 주는 만족감이 크지만 '목표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한 삶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을 생활화하려고 한다.


숫자는 그저 거들뿐이다. 나를 흔들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왕자>를 읽었고 애정하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화요일엔샛길독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과 나와 그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