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화요일엔 샛길독서 : 어린 왕자 3
( 라라크루에서는 화요일마다 윤병임 작가님이 독서의 샛길을 안내합니다. 함께 읽고 생각하여 글로 남기는 작업입니다.)
꽃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자신들을 지키려는 거란 말예요.
They assure themselves as best they can.
(어린왕자 7장)
감정이 이끄는 대로 가시를 막 드러내고 싶은 날이 있다. 맨질맨질 매끈하던 마음에 뾰족뾰족 가시가 돋아나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딱 한 놈만 걸려라!'라며 상대를 물색하는 것이다. 무엇이 됐든 거슬리게 하는 대상이 나타났을 때 내게 생겨난 가시를 다 꽂아주고 나면 나는 다시 예전의 맨질 매끈하던 상태,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런 상대가 눈앞에 나타난다 해도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쉽사리 내뱉지 못한다.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가시에게 크게 피해 입는 대상은 상대보다 나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시를 써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를 고민하고 의심한다. 혹은 함부로 가시를 드러냈다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평판이 생길까 봐, 상대에게 미움 살까 봐 일부러 참기도 한다. 그런 상황 자체가 피곤해서, 가시를 꽁꽁 싸매버린다. 그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스스로 가시를 제거해 버린 셈이다.
장미에게 가시는 해충과 동물의 피해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다. 덩굴줄기가 다른 식물이나 구조물에 붙어 자라나 더 많은 해를 보기 위해서도 가시가 필요하다.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도구인 가시는 장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인장, 오이, 파인애플, 보리 등 다양한 식물에서 가시를 발견할 수 있다.
기술은 이들의 가시를 제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경기도농업기술원이 육종해 2016년 대한민국 최우수품종으로 선정된 <필립> 장미는 색깔이 화려할 뿐 아니라 가시가 없어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가 만족하는 품종이라고 한다. 2024년 미국 코넬대 연구진은 가시 발생과 연관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밝혔고 이를 제거함으로써 식량과 관상식물의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다. 사회는 인간의 가시를, 과학은 자연의 가시를 거세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가시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꽃들이 공연히 심술부리는 것이라는 <어린 왕자> 속 '나'의 말에 어린 왕자는 이렇게 묻는다.
"수백만 개의 별들 중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꽃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별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는 속으로 <내 꽃이 저기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거든. 하지만 양이 그 꽃을 먹는다면 그에게는 갑자기 모든 별들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런데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
가시가 사라진 세상은, 행복할까. 가시 돋친 장미가 생존에 유리해 더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던 것처럼, 사람도 가시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더 단단한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아닐까. 공연히 심술부리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가시 때문에 상처를 주고 입기도 하는 것이 생명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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