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다른 길을 걷는건데 뭐
외모, 직장, 학벌 뭐하나 빼놓을건 없지만 마흔을 이제 넘어버린 나이의 싱글이면 고민이 많아진다. 특히 여자라면 더하다. 바쁘게 지내온 삼십대,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고. 대출받아 아파트를 사고... 등이 당연히 올거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버리면, 이제 가임기간의 시한기간이 가까워지고, 커리어도 어느정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어렵고, 누구를 새로 만나기에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더 많은 그런 나이다. 그러니 더더욱 고민된다. 과연 내 아이가 없이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은 나에게 맞는 일인가, 과연 이남자는 나와 맞는 이가 맞는가. 그렇다고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기에도 어렵다. 너무 늦은것 같다.
하지만 잘한것도 있다. 결혼하고 육아하는 대신에, 나는 내자신을 오로지 바라다보고 연구해왔다. 이제는 내가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디에 시간을 투자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등을 너무 잘안다. 나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다. 뭘 몰라 천방지축이던 이십대와는 다르다.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삼십대와도 다르다. 나에 대한 이해도가 나에 대한 만족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의 하루를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수 있는지에 대한 정도는 거뜬하다. 조용한 아침에 내리는 커피향이랄지, 한권의 책을 끝내고 난뒤의 사색이라던지, 맛은 둘째치고라도 이것저것 시도해불수 있는 내맘대로 요리의 자유랄지.
어짜피 우리가 사는 인생은 이런 작고 작은 행복의 순간들의 개수를 늘리는데 있으니까.
물론 깔깔대는 아이의 소리,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 작은 생명체, 하루를 공유하는 배우자와의 대화 등도 이런 행복의 순간중의 하나지만 나에게는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무엇이 더 대단하고 작고는 없는 것 같다.
돈이 있으면 편리한 자본주의의 사회이지만, 우리는 10평 단칸방에 사는 사람과 100평 맨션에 사는 사람 누가 더 행복해요 라는 질문이 바보같은 것임을 너무나 잘안다. 부부와 아이로 이뤄진 가족을 최소의 사회단위로 보는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덜 행복하다라던지 미완성되었다라든지의 시선 자체가 일단 바뀌어야 하는지 모른다.
가끔 티비 자막에서 접하는 진부하디 진부한 '화려한 싱글' 같은 수식어는 너무나 초라하게 들린다. 웬지 화려하지 않아햐 하는데 화려해보이는 이런 삶의 부러운 부분을 가리려고 하는 초라한 수식어처럼 들린다. 내가 너무 꼬아 듣는지도...
마흔넘어 싱글일수도 마흔넘어 이혼했을수도 마흔넘어 싱글맘일수도 마흔넘어 뭔가를 새로 시작할수도, 마흔넘어 ,,, 뭐라도. 나이가 주는 굴레에 너무 구속되어 생각하지 않는게 더 중요한 과제인것 같다, 우리에겐.
내 몸이 젊은 시절같지 않고. 생각이 정리되다보니 한해 한해가 매우 새롭게 느껴지는 사십대다. 늘 그랬듯, 늘 그러하듯이 아무 탈없이 건강하게 오늘도 행복하게 보낼수 있음을 감사하며 축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