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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파미 Mar 22. 2019

마카오로 가는 길 (Feat.홍콩)

마카오, 홍콩 여행은 처음이지만 전문가처럼

마카오, 홍콩 여행은 처음이지만 전문가처럼




남자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화려한 마카오의 어느 한 호텔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뜨리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쯤은 그려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도대체 그놈의 홍콩의 밤이란 게 뭔지? 그냥 화려한 야경이라서 유명한 건지, 아니면 응??

뭐 하여튼 그걸 동시에 맛보기로 하고 계획을 짰다.


물론,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4박6일의 일정이라, 끝없는 공부는 덤이었다. 가기 전 각종 패스나 승차권 및 마카오-홍콩 간 배타는 법, 공연티켓 예매, 맛집 찾기 등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연구는 계속됐다. 

비행기 티켓 예매에서 상당한 시간을 끌었지만 마카오를 주 활동무대로 정하고 인아웃 티켓을 끊었다.

(홍콩을 아웃으로 해야 했었나? 라는 고민을 했지만 다녀와보니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마카오 공항 도착시간은 대략 저녁 8시 30분쯤. 그렇다면 체크인을 하고 잽싸게 짐만 놓고 내려와서 동네를 둘러보며 저녁식사겸 맥주한잔이 충분히 가능한 시간. 

다수의 동남아와 유럽, 일본 등 여행을 꽤나 다녀본 나로서는 (우쭐모드) 모든걸 머릿속에 그리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마카오 땅을 밟았다. 

후덥지근한 기운이 느껴지며 바로 이게 여행의 맛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공항 밖으로 나왔다.


"우와 이게뭐야?"


화려한 호텔의 불빛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웠고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별일 없다는 듯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가 묵을 곳을 미리 배워온 중국어로 유창하게 전달했다.


"쓰지" 

"???"

"쓰으지"

"???????"

"???? 쓰....지?"


아니 왜 나의 정확한 광둥어 발음을 못 알아듣는 것인가? 당황해하던 찰나 되려 영어로 물어왔다.


"뽀씨즌?"

"아! 예스! 포시즌!!"



목적지 전달은 됐지만 도대체 왜 이 간단한 단어를 못 알아듣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금세 호텔에 도착했다.

빠르게 체크인을 하고 싶었지만, 독특한 중국식 영어 발음으로 뭘 이렇게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지 점점 내 귀가 마비되는 것 같았다. '이러려고 내가 영어를 배웠나?' 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가까스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옷만 대강 갈아입고 내려왔다. 벌써 9시 30분이 훌쩍 넘은 시간.

어서 빨리 대충 동네나 훑어보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밥과 술을 마음껏 즐기리라. 그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

뜨거운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큰길로 나온 순간 이상한 느낌을 감지했다.

길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암만 둘러봐도 1층 길거리에는 가게처럼 생긴 곳은 단 한 군데도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나를 둘러싼 거대한 호텔의 화려한 불빛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호텔에서 나와보니 이런...꼰래드
파리지앵앞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그동안 쌓아온 여행 경험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크게 당황했지만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 부리며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직원에게 물어보면 쉬울 것을 후후.


쉽기는 개뿔. 근처에는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이나 술집이 없으며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단다. 그게 아니라면 호텔 내에 있는 라운지를 이용하거나 바로 옆 베네시안 카지노 내에 있는 식당을 이용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없이 카지노 구경도 할 겸 그쪽 식당을 찾아가서 늦은 저녁을 먹었지만 딤섬도 별로였고, 맥주도 비쌌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벌써 11시. 피곤이 몰려왔다. 슬롯머신 몇 번 돌려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 날 오후인 월요일, 오늘 오후 5시에는 댄싱워터쇼를 봐야 하므로 가까운 타이파 빌리지를 가보기로 했다. 직원 설명을 듣고 베네시안을 통해 걸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작렬하는 햇빛에 노출된 살이 따끔거렸다. 아니 살이 익는 줄 알았다. 

숙소로 돌아왔다가 체력을 회복한 뒤 공연을 보러 갔다. 티켓을 바꾸고 공연장으로 입장하니 규모가 조금 크긴 하지만 여타 공연장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물론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바닥이 물로 바뀌고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높이에서 뛰어내리고 할 때만 해도 탄성을 지르기 바빴지만, 나중에 오토바이까지 출현할 때는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하고 끝까지 마음을 졸이며 관람했다. 

형식적으로 예의상 치는 박수가 아니고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타이파빌리지에서 먹은 점심 (육포같은 소세지가 얹어져있는 밥)
볶음밥인데 맛은 괜찮은 편
타이파빌리지에서 괜히 한장 찍어드림
분수쇼 시작하기전 윈팰리스 앞




날씨도 쾌청한 셋째 날은 홍콩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구입하니 페리 요금도 할인받고 돌아올 땐 리무진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란 녀석 알뜰도 하다.

말로만 듣고 화면으로만 보던 홍콩을 드디어 내가 밟게 되다니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감흥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덥고 습한 기운이 우리를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마카오의 더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습함에 5분만 걸어도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빅버스투어 티켓을 겨우 받고서는 어느 한 이름 없는 블로그에 소개되었던 완탕면 집을 찾아갔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골목을 헤집고 가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여행자는 아무나 다가는 맛집에 가지 않는 법. 

허름한 간판에 촌스러운 미닫이문을 소리 내며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은 대충 보아도 잘해야 6~7테이블 정도.

자리가 별로 없다 보니 합석은 기본이다. 완탕면에 초이삼(공심채?) 인지 뭔지 아무튼 늘 먹는 그 채소를 하나 주문했다.

처음 먹어본 본토 완탕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식감의 면발이 정말 특이하면서 좋았고, 완탕 속에 들어간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도 맛있었으며, 무엇보다 국물이 예술이었다. 전날 마신 술이 전부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맛있고 개운하면서 시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예술이었다. 저렴한 가격은 덤.


우리는 침사추이 쪽 빅버스 블루라인을 선택했는데 버스정류장 찾지 못해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다행히도 나는 여행전문가가 아닌가? 보란듯이 앱을 깔고서 근처 정류장을 쉽게 (겨우 30분 만에?)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위에 지친 부모님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에서 전혀 내릴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결국엔 한 바퀴 돌면서 주위 구경만 하고서는 원점에서 하차했다. 


자, 드디어 홍콩의 메인 테마인 야경을 보러 가보실까? 

택시를 잡아타고 매표소에 도착해서 표를 바꾼뒤 피크트램을 타려니 오후 5시가 안되었는데도 그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패스트트랙인데도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탈 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야경은 보지 못했다. 돌아오는 배 시간이 8시였기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었고, 그다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대신 돌아오는 배안에서 홍콩 쪽을 바라보는 야경은 실컷 볼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마 하루 만에 홍콩의 많은 것을 보기는 어려웠겠지만, 부모님이나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홍콩에 도착하는 모습
빌딩들이 빼곡하고 바닷물 냄새가 가득하다
존맛탱 완탕면
이런 배경일땐 괜히 한컷 찍어드림
이것이 바로 홍콩의 야경...이 아니고 주경
마카오로 돌아가기 직전인데 도떼기시장이 따로없다




이번에는 셔틀버스를 타고 구시가지를 구경 나왔다. 남들 한다는 건 또 다 해본다.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세나도 광장...을 연상했지만 사람만 엄청나게 많은 자그마한 공터였다.

성바울 성당으로 올라가는 내내 육포를 얻어먹었고, 사진 찍고 바람 한번 쐰 뒤 내려오면서 또 육포를 받아먹었다.

오르락내리락 몇 번 하면서 모으면 술안주로도 충분하겠다는 얍삽한 생각도 했다. 


마지막 날 밤엔 이미 한번 들른 적 있는 타이파빌리지에 있는 펍 "태번" 에서 맥주를 마셨다.

보통 이런 펍들이 안주가 그저 그렇기 마련인데, 이곳은 안주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다만, 음식이 나오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혹시 내가 시킨것을 얘네들이 까먹고 주문을 넣지 않은 게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고도 한참을 더 있어야 가져다준다. 

늦게 나오는 안주 덕분에 맥주를 꼭 두어 잔씩 더 마시게 되는 장점(?)도 있다.


베네시안 호넬에서 베네치아인척 구경하기
태번에서 생맥주 한잔
나도 한잔, 아니 여러잔
성 도미니크 성당 (규모는 작지만 색감이 예쁘다)
성 바울 성당에서 올라오는 길 바라보기




체크아웃을 천천히 하고서 짐을 맡기고 점심까지 먹고 나니 딱히 할 일도 없거니와 더워서 별로 나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괜히 베네치아 호텔 이곳저곳을 패키지 여행객들처럼 구경하다가 여태까지 쓴 돈을 회수하겠다는 의지로 슬롯머신 앞에 앉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약 6시간에 걸친 슬롯머신과의 사투에서 당당히 승리하며 공항까지 가는 택시비를 버는 쾌거를 이뤄냈다. 


다른 여행지와는 사뭇 달랐던 이곳 마카오. 

호텔 지하로만 몇 킬로미터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밥 먹을 데가 만만치 않아 얼마나 많은 고급식당을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고작 푸드코트 앞을 몇 번씩 왔다갔다하며 얼마나 신중히 메뉴를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것들이 보통의 관광지와는 달라서 익숙지 않았고 낯설었고 물가도 비싼 편이었지만, 분명히 몇 가지의 매력을 갖고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다. 

동남아와 중국 중간쯤의 독특한 분위기와 향을 느낄 수 있고, 색다른 음식문화도 맛볼 수 있으며, 적당한 비행시간으로 제대로 된 휴가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카지노에서 잭팟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나처럼. (=택시비)



마카오로 가는 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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