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드 리버>(Wind River, 2017)
땅, 그곳에는 죽음이 서려 있다. 두 발이 몸을 지탱하는 한 인간은 대지를 벗어나지 못한다. 모든 생명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 세상을 얼려버릴 듯한 한기가 땅을 뒤덮고 있다. 자연은 선악의 너머에서 인간을 심판하듯 에워싼다.
맨발의 소녀가 설원을 달린다. 죽을 힘을 다해 달리던 소녀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미국 서부 와이오밍주의 윈드 리버, 이곳의 추위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얼음에 가둔다. 영화 <윈드 리버>(Wind River, 2017)는 각본가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한 장편영화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Sicario, 2015, 드니 빌뇌브 감독)와 <로스트 인 더스트>(Hell or High Water, 2016, 데이비드 맥켄지 감독)의 각본을 쓰기도 했던 테일러 쉐리던은 멕시코 국경지대의 후아레즈(<시카리오>), 황폐한 텍사스(<로스트 인 더스트>), 윈드리버산맥(<윈드 리버>)으로 미국의 경계를 그린다.
주인공 코리(제레미 레너)는 윈드리버 야생동물을 사살하는 헌터다. 그는 눈 속에서 우연히 한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신입 FBI 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 이 사건 담당자로 윈드 리버에 온다. 윈드 리버의 환경과 사건이 낯선 제인은 코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들은 죽은 소녀가 정유공장의 백인 용역 경비원들에게 강간 된 후 애인과 함께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인은 코리의 딸 역시 3년 전 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에 비통해한다. 수사과정 중 불현듯 등장한 플래시백으로 관객은 술에 취한 성희롱과 장난이 비극의 원인이었다는 허망한 진실을 목격한다. 모두가 벗어나고 싶어 하는 윈드 리버는 야생동물의 공격을 걱정해야하는 일상의 공간, 백인들을 증오하며 불행한 삶을 연장하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아가는 땅이다.
야만은 삶의 정지와 권태에서 싹튼다. <윈드 리버>의 야만은 주 하나 크기의 지역을 경관 6명이 커버해야 하는 공권력의 열악함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의 희망 없는 삶을 사는 인디언들은 대학을 나와서도 술과 마약에 취해 산다. 코리는 피해자의 오빠 칩에게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는데 쓰레기처럼 산다.’라며 책망한다. 칩은 “이런 지옥에 사는데 별수 있겠어? (중략)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겠어요? 화가나 온 세상이랑 싸우고 싶다고. 내 심정을 알기나 해요?”하고 서글픈 막막함을 드러낸다. 코리에게 생포된 가해자 피트(제임스 조던)는 “이런 곳에 갇혀 사는 기분이 어떤지 알아? 여긴 아무것도 없잖아. 여자도! 여흥도! 그저 눈만 쌓이고 또 쌓이고 지루하다고! 지겨워!”라며 성폭행과 살인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항변한다. 인디언이 내몰린 척박한 자연은 진보와 희망 없이 정지된 시간 속에서 운을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 속에서 인간은 오직 강한 자만 살아남는 힘의 논리에 복종해 생존할 수밖에 없다. 백인 가해자들은 이 지루하고 권태로운 공간에서 생을 연명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했다. 윈드 리버에서 한 세기를 살아온 가족력으로부터 코리는 ‘이 땅을 벗어날 수 없음’과 야만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룰을 체득했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어차피 내가 이길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주류사회와 멀리 떨어진 경계지역은 빼어난 자연경관이 자리한다. 아름다운 설원 아래, 개척과 정복의 열망으로 가득했던 비극의 역사가 묻혀있다. 자연의 엄혹함은 법과 윤리가 작동하지 않는 땅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인간은 안간힘으로 경계를 벗어나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탈출에 실패하면서 경계의 폐쇄성이 짙어진다. 죄와 악은 인간이 저지르는 범죄 자체가 아니라,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대지에 깃들어있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마약범죄와 법의 실패로 중남미 지역의 폐쇄를 그렸다면, <로스트 인 더스트>는 금융자본의 지배하에서 회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소시민의 쓸쓸함을 고립된 공간에 담아낸다. 죄는 한 개인의 오류가 아니라 야만적 힘 아래에 놓인 인간이 맞이한 불가피한 사태다. ‘총’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비정함이 서려 있다. 기회의 땅, 미국은 폭력의 비극이 곳곳에 새겨진 땅이 아니던가. <윈드 리버>의 아름다운 눈은 이 야만마저 뒤덮는다. 망망대해처럼 뻗은 설원은 끝없이 이어져 방향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사막처럼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미궁같은 세계의 막막함을 품는다. 세계의 경계에는 과거 서부 개척시대에서 뿌리내려온 역사로부터 정부의 이주정책으로 내몰린 인디언 부족이 힘겹게 살고 있으며, 이들은 법의 치안 바깥에 내팽개쳐져 있다. 살아남기 힘든 땅에서 집계조차 힘든 인디언 여성 실종사건의 비극은 일상에 상존한다. “우리 가족은 여기서 100년 가까이 살았어. 빼앗기지 않은 건 이 눈과 지루함 뿐이야. 넌 뭘 빼앗았지?” 라던 코리의 말처럼, 영화<윈드 리버>는 정지된 삶 속에서 생을 연명하는, 빼앗긴 자들의 낙관 없는 무력함과 슬픔을 되새긴다.
* 이 글은 <예술문화비평> 제25호 겨울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