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 인터뷰 내용
뇌를 좋아합니다. 뇌의 다양한 특징들 중에서도 보상, 동기 부여, 부정적인 사건의 극복, 새로움의 추구, 학습처럼 신나고 적극적인 측면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파민이 의사 결정과 학습에서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중뇌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의 활동은 보상에 대한 예측 오류와 대단히 유사합니다. 보상의 예측 오류란 어떤 시점에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보상의 크기와 해당 시점에서 실제로 얻은 보상의 크기 사이의 차이를 뜻합니다. 예측 오류는 의사 결정과 강화 학습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 속에서 제 연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가려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 연구 주제에 직접 관련된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는 주제의 연구를 하는 과학자 및 기술자들과 소통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및 기술자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연구를 해가는 방식,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는 여러 분야를 두루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뇌과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배운 내용이 들어있기도 하고, 연구 과정에서 얻은 통찰도 들어있지만, 지금 하는 연구와 직접 관련된 챕터는 두어개 뿐입니다.
뇌과학은 인간의 마음과 정체성에 깊이 연관된 학문이기 때문에 왜곡되거나 악용될 경우, 우생학으로 변질된 진화론보다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해서 업으로 삼고 싶은 학문이 악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틈날 때 마다 다른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블로그 등에 글을 쓰고, 발표를 했습니다.
하지만 단편적인 대화만으로는 뇌과학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납득시킬 수도, 뇌과학의 왜곡과 악용이 왜 심각한 문제인지도, 뇌과학이 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도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제가 “이러이러 해야 한다”라고 당위를 주장하기 보다는 그저 뇌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뇌가 어떤 것인지 보고나면, 제 관점을 이해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뇌에 대한 이해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 때문에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려워지는 것을 감수하고, 최신 뇌과학 논문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첫째, 백신 반대, 기후 변화 부정, 진화론 부정 등 과학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과학을 불신하면 과학에 투자하지 않겠지요. 연구비가 줄어듭니다. 동물 실험이 꼭 필요치 않은데도 생물학자들이 동물 실험을 핑계로 동물을 학대한다고 오해하면, 연구 시설이 철폐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하버드의 영장류 연구소가 문을 닫은 바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나노 기술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시민들이 수차례 연구소에 폭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이해받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해 받고도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오해의 결과를 감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연구는 시민들의 승인과 지원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는 시민들에게는 연구의 지원 여부에 의견을 표할 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과학에 관심을 갖는 과학자가 많아질수록 과학은 더 널리, 더 깊이 이해받을 것이고, 연구에 대한 시민 사회의 지원도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보다 생동감 있고 다양한 과학이 되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과학 연구 주제는 선진국(주로 미국)이 정한 어젠다와 연구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빠른 추격자가 될 지언정, 선도자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시민 사회와의 소통은 과학에 독창적인 소재와 시각을 제공해주지 않을까 합니다. 흑체 복사 이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도 당시 유럽의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과학 철학을 연구하는 장하석 교수도 “과학은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인간적으로 하는 문화적인 활동”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나라의 특색이 과학에 더해지면, 다양한 나라의 특색이 더해지며 음악이 다채로워졌듯이 (재즈, 락 등… ) 과학도 풍성하고 다채로워 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연구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과정이고, 대중과의 소통(책)은 여러 주제에 두루 관심을 갖는 과정입니다. 넓이와 깊이를 모두 갖추어야 해서 시간 투자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미국 Arizona에서 마쳤는데, 학교가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시골 사막에 있었습니다. 저는 자가용도 없어서 할 게 정말로 공부 밖에 없었습니다. Nature, Science 등 저널에서 보내주는 Email Alert를 자주 보았고, 출퇴근할 때는 영어 공부를 겸해서 이들 저널에서 내는 Podcast를 들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석사 때만큼 시간이 나지 않아서 넓이와 깊이 사이의 균형을 잡기가 만만치 않네요. 아직 극복하지 못한, 극복하고 싶은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뇌과학의 악용에 대한 염려와 선용에 대한 바람, 뇌과학에 대한 자부심은 저에게 꽤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사석에서도 틈만 나면 뇌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보고 반응을 살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블로그 등에서 뇌과학에 대한 내용을 쉽게 쓰는 연습도 간혹 했구요. 이런 연습이 쌓여서 한겨레 사이언스온과 경향 신문에서 연재할 때 도움이 되었고, 이렇게 연재한 내용이 책으로 출간될 수 있었습니다.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저는 과학자 vs 대중이라는 구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구분은 어떤 영역에서는 과학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대중’들을 은근히 깔보는 한편, 과학자는 ‘대중’보다 당연히 더 높은 수준에 있다고 전제하는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자신의 영역에서는 전문가이며, ‘과학자’라는 사람들도 자신의 전공 영역을 벗어나면 비전문가가 됩니다.
과학자 vs 대중이라는 구분은 이런 진실을 가림으로써, 과학자가 자신의 전공 영역을 벗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자격으로 말하도록 부추깁니다. 또한 과학자의 모든 발언이 ‘전문가’의 발언으로 여겨지도록 유도합니다. 과학자가 학계 밖에서 활동할 때는 전공 영역을 벗어난 내용을 다룰 때가 많기 때문에, 시민 과학이 중요해 질수록, 과학자 vs 대중 방식의 구분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상식 수준의 과학(비전공자를 위한 과학)과 전문화된 과학(과학이 업인 사람들의 과학)을 일렬로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와 후자는 애시당초 목적이 달라서 동일한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업인 사람들에게는 자기 분야의 이해를 진전시키는 일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연구 역량과 최신 지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전공자에게는 개인적, 사회적인 영역에서 현명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과학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 백신,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같은 문제에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사회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을 비롯한 에너지 정책, 인공지능의 윤리적인 사용에 대한 정책, 4대강 정책 등에 시민들의 건강한 비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전공자에게는 현명한 생활을 위한 정확한 과학 지식, 가짜 뉴스를 판별할 수 있는 과학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학의 대중화 만큼이나 시민의 과학화가 필요합니다. 다행히도 그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전에는 과학을 무조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달라는 비전공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깜짝 놀랄만큼 깊이 알고 있는 비전공자들이 많고, 진짜로 과학을 좋아해서 어려워도 과학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과학을 깊이 공부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학이 단추 다는 법, 부동산 계약하는 법처럼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이자, 권리이자, 사고 방식임을 시민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과학이 절대적인 fact라는 믿음에서 벗어났으면 합니다. 과학은 집단적인 과정이므로 소수 대가의 말을 무조건 믿거나, 예전에 배운 것을 고집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배워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과학자(대학원생)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시민 과학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시민 과학 활동에 '참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아래의 (1)과 (2)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계시니 잘 아시겠지만, 과학자는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더욱이 연구에 필요한 역량과, 시민 과학 활동에 필요한 역량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바쁜 과학자들에게 연구와 교육과 시민 과학 활동을 모두 떠맡기지 말고, 직업을 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공계 박사 학위를 이수한 뒤, 과학 언론, 과학 정책, 과학관, 학교, SF작가, 과학 법률 자문, 번역 등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1) 이런 변화는 부분적으로 박사 학위자가 늘어나면서 과반수의 박사 학위자가 학교와 연구실에 안착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시민 과학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공계인들이 다양한 시민 과학 직종으로 진출하도록 국가와 대학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하지만 이런 변화가 공짜로 일어날 리는 없으니 정책가들에게 알리고, 시민 과학 활동을 통해서 유권자인 시민들에게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이 어떤 것이 될지, 과학자가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과학자의 역량을 벗어난 많은 것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험실을 벗어난 과학이 잠재적으로 위험해질 여지가 있다면, 혹은 훨씬 더 유익하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논의하는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뇌과학의 윤리적인 사용을 고민하는 분야인 신경윤리학이 이런 과정을 통해 생겨났으며, 이 과정에서 뇌과학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의 연구 여건이 너무 어려워서 과학자로 입에 풀칠하고 살면서 시민으로서의 역할까지 다하기가 힘들다면, 그런 현실에 대해서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에게 시민 과학이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알리고, 효과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정책 지원이 이뤄지도록 목소리를 내야 더 나은 사회와 더 나은 과학이 되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과학자는 자기 전공이 아니라도 연구가 이뤄지는 과정, 연구 성과가 공개되고 논의되는 방식, 과학적 결과물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다른 분야의 종사자들보다는 더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전공과 딱 들어맞는 분야가 아니어도, 사회 현안에서 과학적으로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여겨질 때 과학자답게 연구 절차와 결과에 대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과학자 집단(혹은 시민 사회)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현안에서는 자기 전공과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워낙 드물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연구자 풀이 좁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라도 (서로 잘 아는 같은 분야 사람들끼리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우므로) 꼭 필요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저도 아직 대학원생인지라 조언을 드리기가 민망합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위에서 다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