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문화적 측면과 헌법 내 과학-기술의 위치
현장에 적용될 여지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자연과학은 비실용적일까요?
사람들은 실제의 세계가 아닌 외부 세계에 대한 생각에 따라 살아갑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경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즉,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이 바둑을 두는 일주일 사이에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기 때문(즉, 실제 세계가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 자신에 대한 생각,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죠.
자연과학의 발견인 지동설과 진화론이 그토록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도, 지동설과 진화론이 세상에 대한 생각, 그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날에는 중력파, 빅뱅, 양자역학 등 물리학의 발견들과 빅히스토리가 세상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고 있고, 뇌과학을 비롯한 생물학이 인간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고 있죠.
이처럼 세상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생각, 그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바꿉니다. 이런 측면에서 자연과학은 대단히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대한 생각, 나에 대한 생각, 그 세상 속에서 나의 위치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경제 발전의 시각에서 보는 데 익숙합니다. 대포 쏘아대는 제국주의와 함께 과학을 맞아들였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그 과학과 기술 덕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으니, 일견 타당한 시각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 발전의 시각에서만 과학과 기술을 대하면, 과학이 우리의 행동과 태도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과학의 문화적인 측면)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윤리 문제나 안전 문제도 등한시하게 되지요. 실제로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정보통신 기술과 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에 대해서만 배웠지, 그것이 불러올 수 있는 사생활 침해, 빈부격차, 해킹, 생명 윤리에 대한 내용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안전과 윤리는 점점 등한시 해서는 안될 문제가 되어가고 있지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다루는 태도가, 과학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대하면 당장 투자 가치가 있어보이는 중심부의 연구에만 지원하기 십상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도 그런 현상이 많은 과학자들이 우려를 제기할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소수의 과학자, 소수의 토픽에 투자를 집중하는 경향이 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모든 중요한 변화는 주변부에서 시작됩니다. 노벨상을 받았던 연구들도, 연구자들이 연구하던 무렵에는 주변부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을 무렵이면, 전문가 그룹에서 '선두 주자'라고 불리거나, '혁신'이 되기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시점이기도 합니다.
아래의 링크는 이런 문제 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헌법에서는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만' 보고 있습니다. 아래의 시도는 이러한 현행을 바꾸어, 과학을 문화적인 관점'에서도' 보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몰랐던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 여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생겨난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ESC 분들도 오랜 기간 준비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ESC 회원이 아니어도 서명하실 수 있으니 동참해주세요.
당신이 살아가는 세상(세상에 대한 생각, 자신에 대한 생각,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각)과, 역설적이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서요.
http://www.esckorea.org/board/notice/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