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민령 Nov 12. 2020

"한국에는 왜 일론 머스크가 없을까?"

cf. 엄마 친구 아들은 맨날 1등이라던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한국에는 왜 일론 머스크가 없냐라는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도 머스크처럼 성공적인 혁신가가 많기를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엄마 친구 아들은 맨날 1등이라던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라는 질문이 실질적인 개선에 도움이 안 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저런 질문은 시작부터 애써 변하려는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무엇보다 바라는 게 뭔지 explicit 하게 표현되지도 않았어요. 바라는 걸 그대로 표현하면 될 걸 왜 본인이 원하는 건 묻어두고 상대를 깎아내릴까요?

나아가서 식상해요. "선진국은 이런데 우리는 왜 "류의 논의는 그동안 지겹도록 많았습니다. 질문부터가 자기 비관이었으니, 대개가 한국은 문화가 나빠서 어쩔 수 없다는 류의 막연하고 무책임한 (당장 해결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결론으로 끝나곤 했죠. 답답해서 이야기 꺼낸 사람도, 시간내서 들은 사람도 아무 소득이 없는 결론이며 자기 비관만 강화하는 결론입니다. 질문이 잘못되었으니 답도 틀리기 쉬운 거지요.

"(1) 우리는 이걸 원해! 근데 머스크가 우리가 원하는 거랑 비슷한 걸 하고 있는 거 같네. (2) 머스크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게 구체적으로 뭐고, 우리는 이 중에서 뭘 치마킹할까? (3) 지금 우리가 가진 자원은 뭐지? (4) 쟤를 참고해서 우리 목적을 달성하려면 뭘 해야할까?"
라고 묻는 게 (좀 길고 MSG는 적지만) 맞다고 봐요.

----
(1)번은 첫 문단에서 다루었으니 (2)번부터 볼까요? 한국에 왜 머스크가 없냐고만 하면 막연한 선망만 품고 시작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머스크가 어떤 얘고, 걔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본받을지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뜬구름만 잡기 쉽지요.

상상을 구현하기보다 실례를 참고해서 구현하는 게 더 쉬워서 벤치마킹을 하는 건데, 이래서야 머스크가 실존인물이든 가상의 인물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런 패턴은 우리가 "선진국"이란 표현을 쓸 때도 수시로 반복되어 왔습니다. "선진국은 ~~한데 우리는.."라고 입이 닳도록 말해왔지만, 선진국의 조건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 나라들이 실제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모르면서 써왔지요.

소위 선진국이라는 십여개의 나라들이 똑같은 것도 아니고, 저 나라들이 장점만 가진 것도 아닌데 "선진국"이라는 실제의 나라가 있을 리가요. 각자가 생각하는 이상국가에 더 가까웠을 겁니다. 사람마다 이상국가가 다르니 "선진국"이라는 단어는 혼란과 논쟁을 초래하고 공연한 열등감만 부채질하기 좋았지요.

실제로 알맹이를 까보니 예상과 달랐잖아요. "선진국"도, "노벨상"도 그토록 선망해 왔는데, 이번 코로나 때 하는 걸 보니 선진국에도, 노벨상에도 허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대응이 완벽했다는 게 아닙니다. 선진국 및 우리 자신에 대한 상상과 실제가 달랐고, 관측과 상상에 차이가 있으면 관측을 덮을 게 아니라 상상을 수정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2)에 관해 조금 더 보태자면, 저렇게 질문하면 우리 목표의 상한선이 기껏해야 머스크가 됩니다. 물론 머스크는 놀라운 성취를 이뤄냈어요.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와 연구 덕분이라기 보다는 페이팔로 벌어들인 돈이 많았고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땅값이 뛰었다랑 얼마나 다른지요?), 그 돈으로 직원을 뽑아 악명높게 갈아넣었으며, 마케팅이 수준급인 덕분도 큽니다.

예컨대 Neuralink는 머스크가 말하기 십몇년 전부터 있던 brain-computer interface (BCI)입니다. 그런데 neuralink를 보고 BCI를 바로 연상하지 못할만큼 마케팅을 잘했어요. 테슬라 자동차도, 실물이 가능하리란 걸 알기 몇 년 전에, 핸드폰보다 휘얼씬 비싼 자동차를, 그렇게나 많이 팔아먹었으니 가히 세일즈의 신이라고 할 만합니다.

개인적으로 머스크의 세일즈 역량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나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주영은 후진국이던 한국에서 태어나 현대를 만들었으니 (지금이야 IT지만 그 땐 중화학공업이죠) 당대의 머스크 급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요즘같은 시절에 직원을 갈아넣는 머스크와 비교하면 그 시커먼 냉전기에 노조를 만든 정주영이 훨씬 더 커보이기는 합니다.

-----
(3)번 내가 가진 자원에 대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왜 머스크가 없냐는 질문은 우리가 부족한 게 뭐냐에만 초점을 집중합니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하려면 보유자원과 부족자원을 둘 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나한테 있지도 않은 가상의 부족자원보다는 보유자원이 어찌보면 더 중요합니다. 그래야 보유자원으로 부족자원을 외부에서 구하든 대체하든 할테니까요. (있어본 적이 없어서 막상 생겨도 성공할지 장담하기 힘든) 부족 자원에만 초점을 집중하면 오히려 보유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포철 박태준이나 현대 정주영이 당대의 일론 머스크 급이라고 봐요. 그 당시 기술이 우주선이나 BCI가 아니라 중공업이었고, 중저진국에 태어난 탓에 출발선이 머스크보다 한참 뒤쳐져 있었을 뿐입니다.

잘 모르는 환경에서 자란 잘 모르는 머스크를 부러워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친숙한 환경에서 자란 잘 아는 사람 (정주영 박태준 등)을 몇명 더 배출하자고 하는 게 더 합리적인 목표 아닐까요?

정주영 같은 몇몇 개인이 아닌, 전반적인 문화로 시야를 넓혀도 그렇습니다. 걸핏하면 문화와 국민성을 탓하기에 우리가 후진가보다 고개 숙이고 살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우리 문화와 국민성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말에는 세계관이 담길 수밖에 없는데 한국 영화나 드라마, BTS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대응하려고 불편해도 마스크를 쓰고, 사재기를 하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시민의식도 놀랍지요.

노력도 없이 민주주의를 수입해서 의식이 부족하다고들  했는데 알고보니 우리는 3.1운동과 임시정부로부터 시작된, 자발적으로 민주주의를 선택한 나라였습니다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거의 전세계가 식민지이던 시절에 임시정부를 꾸린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합니다. 한중일 3국 중에서 헌법 1조도 가장 민주주의에 부합합니다). 문통을 개인적으로 좋게보든 나쁘게보든 돌하나 던지지 않았던 촛불혁명도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라고 지칭된 타자만 보고 자기 생각은 검증하지 않는 태도라고 봐요. 겸손이 지나쳐서 엄중한 자책만 반듯하게 여기고, 자책을 관측된 사실에 따라 정정하는 과학적인 태도는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강하게 자기비판을 했더라도, 나중에 틀렸음이 확인되면 틀린 판단으로 이끈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부터는 예측(estimation)의 정확도가 더 높아지겠지요. 

(요즘 인공지능, 강화학습 공부하는 분들 많으시죠? 이렇게 정정없이 예측만 남발하는 프로그램이 상상이 되시나요? 저는 웃음부터 나옵니다 ㅎㅎ)

더욱이 "우리"에 "내"가 포함되므로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반듯하다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대개는 "나와 우리편을 제외한" 우리나라를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대해 엄정한 시각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식인의 비판적인 시각"이라고 여겨져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하물며 사실 확인도 안된 비판이거나, 예전에 여러번 틀렸는데도 개선되지 않고 같은 유형의 비판이 반복된다면요.

======

영화 <매트릭스>에서 "숟가락은 없다"고 했던가요?

"선진국"도 머스크도 없습니다.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의 질문을 우리 스스로 설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조금 거창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