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도무지 믿어지진 않지만, 김시습은 태어난지 8개월만에 저절로 글자를 알았다고 한다. 손자의 영특함을 본 외할아버지는 시습에게 말보다 천자문을 먼저 가르쳤다. 어린 시습은 말을 못해 웅얼거렸지만, 붓과 먹을 주면 그 뜻을 다 썼다고 한다. 다음은 김시습이 3살 때, 유모가 보리방아를 찧는 걸 보고 지은 시라고 한다.
비는 오지 않는데 어디서 천둥소리가 들리나 .
누런 구름이 조각조각 사방에 흩날리네.
어린 시습이 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이 나자, 학자를 좋아하던 세종은 박이창을 보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게 했다. 박이창의 보고를 들은 세종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내가 친히 만나보고 싶지만 (신동이 나타났다고) 남들의 귀를 놀라게 할까 두렵다. 일단 집으로 돌려보내 재주를 감춰두고 부지런히 교양을 닦게 하라. 나이가 자라고 학업이 성취되기를 기다렸다가 크게 쓰는 게 좋겠다." 고작 예닐곱살 난 송유근을 신동이랍시고 요란하게 마케팅하는 요즘과는 참 다른 모습이다.
'천재' 송유근 팔아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 질시하는 사람들은 많아보인다만, 그 아이를 위해서 바른 소리 해주는 어른이나 친구는 주변에 몇이나 있었을까? 세종대왕이 김시습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잘 자라도록 감춰두고 지켜주는 어른은 주변에 몇이나 되었을까? 주변에 그런 어른이나 친구가 없어도, 머리만 좋고 나이만 먹으면, 온전한 한 사람의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고들 믿는 걸까?
논문 표절 사건의 진상과 무관하게 난 송유근이 안쓰럽다. 걔 고작해야 18살 청소년 아닌가? 몇 년 전 영재발굴단에 참가한 아이들을 맞던 송유근이 "왜 왔어..." 농담처럼 던진 첫마디가 난 참 복잡하고 안됐었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질투와 불신과 부러움과 신기함을 담은 무수한 시선들은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그것에 가까울지언정, 예닐곱살 아이, 10대 청소년, 한 사람의 인간을 대하는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새옹지마라던가... 세종의 사려깊은 관심은 김시습이 세상사에서 마음이 영 떠나버린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21살에 세조의 반정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사흘이나 두문불출하더니 통곡을 한 다음에 책을 모두 불살랐다 한다. 그리고는 발광하여 뒷간에 빠졌다가 달아나 오래도록 떠돌아다녔다.
나에게 그의 기행은 세상 어디에도 마음붙이지 못한 이의 고통스러운 절규로 들렸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도 자기 마음은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시절의 사람들도 오세 김시습이라는 유명세만 보고 사람과 공부의 깊이는 제대로 못 보았던가.
우리시대의 아직 어린 천재는 이제부터라도 좀더 이해해주면 좋겠다.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면 로빈 윌리엄스가 자기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던 윌을 떠났다가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그러다가 깨닫게 됐어. 네가 아직 어리다는 걸... 미켈란젤로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너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말할 수 있을거야. 심지어 그의 성적 취향까지도 알겠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그의 그림을 직접 본 적은 있니? 난 봤어. 감동적이었지..." 머리로 많이 아는 것과 경험을 감당해 내며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르다는 소리다.
천재라도 삶에서는 아이일 뿐이다. 키가 유난히 큰 것이나, 특정 측면으로 머리가 유난히 좋은 것이나 뭐가 그렇게 다른가. 보는 사람이 머리가 좋다는 것에 유난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만 생긴 일이다. 머리가 좋건 나쁘건, 한 사람을 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존중할 수 있었다면, 송유근에게 과도한 혜택이 집중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원숭이를 보는 듯한 관심과 질시가 그 어린 아이에게 집중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송유근 본인의 인생도 저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천재가 아니다. 빠릿빠릿하다기 보다는 되새기며 익히는 편인 데다가 주변에 나보다 똑똑한 애들이 워낙 많았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시절에 우물 안 개구리 정도는 되었는데, 하루는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아빠는 네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고 공부를 잘해서 기쁘다. 그렇지만 공부를 하느라 네 친구들이 네 또래에 하는 많은 것들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라." 최고의 아빠였다. 아빠는 교사셨지만, 그럼에도 공부와 지능이 살아가는데 전부가 아님을 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