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6일 [2024 아시아 송 페스티벌]에서 QWER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가수들의 무대를 즐겼던 저는 가벼운 감기에 걸렸습니다. 11월 6일 동아대학교 승학 캠퍼스 축제 때에는 많은 관객들이 자리해 주셨지만, 한밤의 추위로 몸이 얼어붙었기 때문인지 호응의 열기가 다소 줄어든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제서야 늦가을인 11월만 되어도 야외 공연이 쉽지 않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이제는 QWER 멤버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실내 공연이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원더리벳 2024]가 그 가운데 하나이죠.
QWER은 지난 2023년 12월 2일, 국내 최대의 애니&게임 페스티벌인 [아니메 게임 페스티벌 2023(Anime x Game Festival 2023)]과 함께 열린 '원더리벳 스테이지' 무대에 헤드라이너로 섰습니다. 저는 [롤드컵 전야제]에 이어, AGF 2023 원더리벳 스테이지 영상을 보았는데요. 시요밍의 목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당시에는 곡 수가 부족해서 제이팝 커버를 해야만 했던 QWER이 1년 뒤에는 어떤 곡을 세트리스트에서 빼야 할지 '고민중독'하는 가수가 되었다니,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원더리벳 2024]는 11월 8일(금)부터 10일(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되었지만, 사정상 3일 내내 가는 것이 어려운 저는 QWER이 출연하는 10일 하루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일본 걸밴드 애니메이션인 <걸스밴드크라이>의 밴드인 '토게나시 토게아리'가 8일에, 그리고 <Miss You>라는 곡으로 싸이월드 배경음악을 휩쓸었던 엠플로(M-flo)가 9일에 출연했지만 아쉽게도 볼 수 없었습니다. 대신 레오르(Reol), 메종데(MAISONdes), 아스미(asmi), 야마(yama), 유우리(Yuuri) 등이 마지막 날인 10일에 QWER과 함께 공연한다는 소식에 한껏 마음이 들떴습니다.
제이팝의 경우, 저는 애니메이션 OST를 위주로 듣기 때문에 많이 알거나 깊이 빠져든 편은 아닙니다. 20대와 30대에는 그래도 쟈니스 아이돌인 킨키 키즈(Kinki Kids)가 출연하는 예능과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가수들(대부분의 가수들이 <도모토 쿄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습니다)의 노래에 빠져들어 제법 아는 게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전후로 부상하기 시작한 제이팝 가수들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습니다.
그런데 재패니메이션과 QWER로 인해 다시 제이팝에 관심을 갖게 된 제게, 딱 맞는 지인이 나타났습니다. <샘 리처즈(Sam Richards) 교수 성균관대학교 초청 강연 프로젝트>에 함께 했던 "스파이크"가 바로 그 사람이죠. 그의 닉네임인 "스파이크"는 일본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1998)의 주인공 이름에서 빌려왔습니다. 당시 전성기를 맞이했던 작곡가 칸노 요코의 역량이 한껏 발휘된 애니메이션인데요. 여기에서 닉네임을 빌려올 정도면, 그의 범상치 않은 내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제이팝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엄청난 그는 [원더리벳 2024]에 무척이나 가고 싶어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올해에는 불가능했습니다. 대신 스파이크는 공연에 가기 전 반드시 들어야 할 곡들의 리스트를 제게 카톡으로 계속 보내주었습니다. 가령 야마(yama)가 부른 곡의 경우, 저는 <봄을 고하다(春を告げる)>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번 공연 시간이 무려 60분인데, 그 곡만 알고 가면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스파이크 센세의 특훈을 받았습니다. 다른 가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불성실한 제자는 숙제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공연을 보고 나서야 후회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마치고 11시에 급히 김치찌개 백반을 입에 우겨넣은 저는, 11시 반에 노원 역에서 대화 역까지의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킨텍스 제2전시장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아스미(asmi)의 <요와네하키(ヨワネハキ, 약한 소리 뱉기)>와 <파쿠(PAKU)> 딱 2곡만 2시간 동안 무한 반복해서 들으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본명이 후지하시 아스미인 이 가수는 그 존재 자체가 "귀여움"입니다. 노래할 때의 목소리는 고막을 녹인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며, 평소 말할 때의 목소리는 더욱 애니메이션 성우 같습니다. 한국에서 그녀의 대항마로는 "공룡 고양이" 냥뇽녕냥 히나를 꼽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아스미는 2001년 1월 5일, 히나는 2001년 1월 30일 생입니다. 아니, 동갑내기잖아!
히나야! 기획사에서 하는 정형화된 보컬 트레이닝도 받아야겠지만, 스쿨존 목소리를 절대 버리면 안돼! "악마의 재능" 목소리로 단독 무대를 서는 아스미도 있다고! 슬플 땐 공룡 생각을 하는 것도 좋지만, 대한민국 어느 메이저 가수도 스쿨존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는 점 또한 항상 생각해 주렴! 아무쪼록 스쿨존 목소리를 그대로 살려 아스미처럼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QWER은 놀랍게도 메인 보컬 시요밍 이외에도 나머지 멤버들의 보컬 잠재력이 높습니다. 목소리도 제각기 개성이 있고요. 다시 생각해 보아도 어쩌면 이렇게 멤버를 잘 모았는지, 김계란 칭찬해!
11월 10일 오후는 날씨가 한껏 풀려 따뜻하고 화창했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을 걸으며, 킨텍스 본관을 지나 무빙워크를 따라 킨텍스 제2전시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시작된 토미오카 아이와 사쿠라자카46의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입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따로 줄을 설 일은 없었습니다. 듣자 하니, 오늘 공연에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전날 밤을 새웠던 팬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토미오카 아이의 경우 [아시아 송 페스티벌]에서 뵈었고, 사쿠라자카46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지라 느긋하게 입장했습니다. 어차피 오전 일정이 있어서, 볼 수 없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약 사쿠라자카46이 QWER과 <내 이름 맑음> 챌린지를 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아냐, 그래도 어차피 못 봤을 겁니다.
본디 오사카 아이돌 NMB48 출신인 시요밍에게, 사쿠라자카46은 꿈에 그리던 대선배죠. 그녀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쿠라자카46과 콜라보한 사실이 꿈만 같다고 밝혔습니다. 시요밍은 특이하게도 "일본 여자 아이돌" 오타쿠입니다. QWER이 일본 홍백가합전에 진출하는 것이 이시연 서사의 1차 종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최종 목표는 빌보드 1위겠죠. 하지만 저는 그녀들의 아시아 투어를 더욱 보고 싶습니다. 태국이나 필리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홍콩과 대만 등은 음반이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콘서트나 페스티벌 수익을 올리기에 매우 좋습니다. 가수들의 대부분 수익 또한 콘서트에서 나오죠. 아마 QWER의 2025년 계획도 상당수 정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래서 QWER 사관(史官)인 제가 심심할 겨를이 없죠.
이번 [원더리벳 2024]는 원더 스테이지와 리벳 스테이지 2곳으로 나뉘어 무대가 펼쳐졌는데요. 특이하게도 마지막 날에는 원더 스테이지에서 주로 남성 가수가, 그리고 리벳 스테이지에서 주로 여성 가수가 공연했습니다. 제가 입장할 당시에는 일본 남성 4인조 밴드인 "코디 리(Cody Lee)"의 무대가 원더 스테이지에서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쯤에서 고백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본디 음악에 관한 한, 저는 잡덕입니다. 음악만 좋다면, 남녀노소 가수를 가리지 않고 죄다 들었죠. 그런데 2024년 들어서 QWER 노래만 줄창 듣다 보니, 남성 가수의 목소리가 귀에 잘 안 들어오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코디 리"의 무대가 매우 열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육컵밥을 어디에서 파나 둘러보다가 일찌감치 리벳 스테이지로 넘어가서 "치즈(Cheeze)"의 공연을 위해 대기했습니다.
양 스테이지는 거대한 실내 공간 한 편에 각각 위치하고 있고, 푸드코트와 충분한 숫자의 식사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다 힘들면 거기에 앉아 술이나 음식을 먹으며 쉬어도 되겠더군요. 바닥에 앉아 공연을 보는 팬들도 계셨습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가인을 살짝 닮은 가수 "치즈"는 목소리만큼이나 무대 퍼포먼스 또한 달달했습니다. 침착맨과 김풍 작가의 "파김치 갱" 등 병맛 개그에 길들여진 제게, 달콤한 사랑 노래는 매우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카페 음악에 친숙한 저는 그녀의 대표곡을 <어떻게 생각해>로 알고 있었는데요. 이번 무대에서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녀는 한국을 찾은 일본 팬을 배려해서, "안전지대(安全地帯)"의 <悲しみにさよなら>를 커버했는데요. 그녀의 꿀성대로 듣는 커버송은 오리지널과 다른 느낌으로 참 좋았습니다.
그녀의 공연이 끝난 뒤 "남성 가수" 타니 유우키의 공연이 원더 스테이지에서 이어졌지만, 저는 QWER 무대 앞자리 확보를 위해 그대로 리벳 스테이지에 머물렀습니다. 양쪽 스테이지에서 동시에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는 없으며, 저는 그렇게 50분 가량을 바위게들과 부대끼며 기다렸습니다. [카스쿨 페스티벌] 이후로 이 정도로 빡빡하게 사람들과 서 본 게 정말 오랜만입니다.
QWER의 공연은 15시 25분부터였지만, 리더인 드러머 쵸단은 15시부터 나와 악기 체크를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QWER TIME은 사운드체크부터 시작되죠. 이어서 나머지 멤버들도 우르르 나와 사운드체크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멤버들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상이었습니다. 마젠타는 사운드체크 중에도 벌써부터 팬들을 챙기고 각종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15시 25분이 되어 본격적으로 QWER의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운드체크를 하느라 이리저리 부산스레 움직이다가 난데없이 시작된 공연의 첫 곡은 바로 <사랑하자>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황으로 연주된 적이 없는 넘버입니다. 지난 8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때 처럼, 팬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첫 무대를 연 것이죠. <사랑하자>는 QWER 노래 가운데 가장 기존의 락 형식에 충실한 곡입니다. 어리둥절하여 버벅대던 바위게들은 갑자기 함성을 지르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젠타 쪽에 서 있었는데, 그녀는 오늘 어찌나 흥이 넘치는지 거의 댄스 가수처럼 움직였습니다. 마젠타는 이 곡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며 동시에 서브 보컬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요. <사랑하자>를 현장에서 접하거나 직캠을 볼 때는, 반드시 마젠타를 주목해야만 합니다. 저는 10월 18일 데뷔 1주년 특별 온라인 공연 당시 마젠타의 <사랑하자> 퍼포먼스를 보고서, 성숙미가 넘치는 "찐" 여성 락커의 모습을 발견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그녀의 착장 또한 강렬한 락커 포스를 풍겼습니다. 이번 [원더리벳 2024] 무대에서는 머리에 큰 꽃을 꽂은 요정의 자태로 나와서 그런 포스를 느끼기 어려웠지만, 그녀는 진정 다크하고 섹시한 여성 락 보컬의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참고로 마젠타는 이날 원더리벳 공연이 끝난 뒤 평소처럼 개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자기 연주 직캠을 팬들과 함께 리뷰했는데요. 실력의 레벨 여부를 떠나, 이런 베이시스트는 정말 인류 역사상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2024년 서브컬처가 낳은 신인류입니다. 알고리즘에서 피어난 꽃이죠.
QWER의 메인 프로듀서인 이동혁(이즈리얼, 동동) 노래의 특징은, 떼창 포인트가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사랑하자>의 경우, 최초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미리 합이나 맞춘 듯이 바위게들이 "어이! 어이!"를 외쳤고 "사랑하자~"라는 파트는 어김없이 따라 불렀습니다. <가짜 아이돌>의 "하, 하하, 하하하!", "자알 들어보세용"이나 <고민중독>의 "아, 아, 아직은~", "너를 많이 많이 좋아한단 말이야!" 또한 떼창 파트가 분명하기는 마찬가지죠. 역시 이즈리얼은 찬양받아 마땅한 인물입니다.
<사랑하자> 첫 공연의 호응이 너무도 커서 기분이 좋아진 시요밍은 "오늘 5억 2천 명이 오셨나요?"라며 또 다시 난데 없는 멘트를 이어갔습니다. 시연아, 괜찮아! 계속 해야 멘트도 느니까, 그냥 마구 질러! 마젠타는 (제가 알기로는 최초로) 공연 내내 너무 흥분하고 숨이 차서 멘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는데요. 심지어 마젠타는 <가짜 아이돌>을 위해 5현 베이스로 바꾸는 것조차 까먹을 정도였습니다. QWER의 이날 공연 텐션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알 수 있죠.
오늘 세트리스트는 <사랑하자>, <가짜 아이돌>, <디스코드>, <수수께끼 다이어리>...그리고 새로운 인트로와 함께 <고민중독>이 이어졌습니다. 본디 <수수께끼 다이어리> 다음으로는 <소다>가 나왔죠. 그래서 바위게들은 <수다>x<소다> 2연타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세트리스트를 조금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오죠. 특히 <수수께끼 다이어리>를 오랜만에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가짜 아이돌>의 경우, 화면이 4분할로 되어 나갔는데요. "보이지 않는 자" 쵸단이 얼마나 드럼을 작정하고 두들겨 패는지 잘 보였습니다. 또한 쵸단의 격정적인 드럼 연주에 많은 관객들이 환호했는데요. "자알 들어보세용~"를 따라 하는 바위게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듣고서 만족스러워하는 그녀의 미소에, 저 또한 행복했습니다. 이후로 쵸단은 더욱 신이 나서 드럼을 죽어라 패다가, <고민중독>을 마치면서 기어코 드럼스틱을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수많은 밴드들이 공연했는데, 그 중에 스틱을 부러뜨린 드러머는 몇 명이나 될까...'청순가련 전투인형'의 파워가 새삼 두렵습니다. 아울러 <고민중독> 공연 때 마젠타 사이드 앞 열에서 일부 바위게들이 "오타게(아이돌에게 보내는 팬의 응원 퍼포먼스)"를 시연해서 멤버들과 김계란까지 기쁘게 했습니다.
공연장 뒷편에서 락 페스티벌에 익숙한 관객들이 "슬램(청중들이 한 곳으로 달려들어 몸을 부딪히는 퍼포먼스)"을 펼쳤던 <내 이름 맑음> 공연 이후, 땀으로 범벅이 된 시요밍의 얼굴을 마젠타가 닦아주었습니다. 땀나영 히나는 "땀피언(땀 챔피언)" 타이틀을 오늘만큼은 시요밍에게 양보했죠. 이어서 <안녕, 나의 슬픔>과 <별의 하모니>를 끝으로, QWER의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공연을 찾은 관객들과 포토 타임을 가진 뒤에도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던 마젠타는, 혼자 남아서 계속 팔찌를 객석에 던져주었습니다. 오프라인 팬 관리 담당은 아무래도 마젠타인 듯합니다. 아, 이날 자정을 넘겨 개인 방송까지 했으니 온라인 팬 관리 또한 마젠타의 몫인가요? 아무튼 정말 대단한 그녀입니다.
QWER 덕분에 여러 축제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접했는데, 지금까지 제게 가장 잘 맞았고 만족스러웠던 축제는 바로 [원더리벳 2024]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의 라이브를 접하고, 거기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페스티벌에 참가한 아티스트들이 부족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제 취향에 가장 맞았다는 뜻이지요. 40대 아재의 덕질일기는 QWER을 통해 좀 더 세상을 폭 넓게 알아가는 아재의 모험 또한 포함하므로, QWER 무대 이후에 등장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짧게 리뷰하고자 합니다.
QWER 공연 관람을 끝낸 이후로는, 본디 공연장 뒤편에 서서 널널하게 보려 했습니다. 제일 큰 미션을 끝냈으니까요. 실제로 그런 편이 나았지요. 하지만 현장에 있으니 또 괜히 욕심이 나서, 레오르(Reol) 공연만큼은 앞에서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원더 스테이지에서 남성 가수 "루시"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한숨 돌린 뒤, 저는 여성 가수 레오르 공연이 준비 중인 리벳 스테이지로 이동했습니다.
레오르의 곡은 <제6감>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접한지라, 그녀의 라이브 실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 때문에 제 주변의 입이 험한 여성들이 "레오르가 오늘 오다니, 완전 미친 거 아냐? 개쩐다!"라고 말할 때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차라리 몰랐던 편이 나았습니다. 덕분에 영혼이 나가 미친 놈처럼 뛰놀 수 있었으니까요.
오늘날 한국 메이저 뮤직 인더스트리에서는 남녀 뮤지션 모두 달달한 미성이 특징입니다. 소찬휘 등의 거친 락 보컬을 메이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레오르는 <바꿔> 이정현의 퍼포먼스와 소찬휘의 락 보컬을 겸비한 채 무대를 장악하여 관객들을 미치도록 만드는 천재적 엔터테이너였습니다. 사실 춤도 전자음도 모두 부차적이었습니다. 레오르와 야마 등 오늘 등장한 일본 여성 솔로들은 본인의 락 스피릿 충만한 재능으로 무대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과거에는 있었으나 오늘날 한국 가요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무대였습니다. 야마나 레오르의 곡을 전혀 알지 못하는 관객일지라도 그녀들의 음악적 재능에 압도되어 미쳐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카리스마를 가졌습니다. 저는 더위를 잘 타지 않고 땀샘이 말라버린 사람인데, 레오르 공연 뒤에는 셔츠가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폭풍 같은 무대가 끝난 뒤, 저는 남성 가수 키타니 타츠야(木谷竜也)가 공연하는 원더 스테이지로 이동했습니다. 식사할 때가 되었지만, 도파민으로 배가 가득 차서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맥주를 마시면 유우리 공연 때까지 못 버틸 것 같아, 밖으로 나와 편의점에서 펩시콜라 제로를 사마시며 운기조식에 들어갔습니다. 남자 가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증세가 도져, 키타니 타츠야의 경우는 <주술회전> OST만 듣기로 했습니다. 키타니 타츠야의 찐팬이 아닌 저 같은 잡덕의 경우, 그는 <주술회전> OST를 부른 뮤지션으로 기억됩니다. 사실 <青のすみか (푸르름이 사는 곳)> 전주만 나와도, <주술회전> 팬들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글썽합니다. 우리는 "음학(音學)"이 아닌 "음악(音樂)"을 즐기는 사람이므로, 키타니 타츠야의 모든 노래들을 다 듣고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억지로 그럴 필요 없이, 각 가수의 유명한 곡 2~3개만 알고 가도 큰 문제 없다고 봅니다. 라이브 공연을 듣고서 좋으면, 또 플레이리스트 확장이 가능하고요.
이제 여자 가수 공연이 있는 리벳 스테이지로 옮겨갈 시간이지요. 일본의 프로젝트 그룹인 "메종드"의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파이크가 제게 "메종드" 음악을 강하게 추천했기 때문에, 귀동냥을 조금 했습니다. 하지만 아스미(asmi)와 야마(yama)가 나오는 곡만 좀 듣고, 나머지는 몰랐습니다. 아...얼마나 후회스러웠던지...
메종드는 특이함으로 가득한 일본 음악계에서도 괴짜 컨셉으로 유명합니다. 일단 정해진 프로듀서나 가수가 없습니다. 어딘가에 있는 맨션의 각 룸에 작곡가와 보컬리스트가 한 팀을 이뤄 자기만의 음악을 들여놓는다는 콘셉입니다. 당연히 각 룸마다 팀의 구성원이 다릅니다. 물론 겹치기도 하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설명은 다 부차적입니다. 무조건 노래만 좋으면 그만이니까요.
제가 이번 메종드 공연에서 가장 실수한 점은, 방 번호를 다 사진으로 찍어놓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스미와 야마밖에 몰랐기 때문에, 얼굴 없는 가수(하시메로, はしメロ) 및 버추얼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보컬로이드 가수(카후, 花譜, KAF)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들의 보컬이 정말로 끝내줬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스미나 야마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버추얼 가수의 경우에는 인기 폭발이었고, 저 또한 그녀의 노래 솜씨에 홀딱 반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면, 버추얼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이 기괴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연 현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 또한 제게는 신세계였죠.
아니, 도대체 일본에는 개성이 넘치면서 라이브 실력이 끝내주는 실력자들이 어째서 이렇게 많은 것일까요? 여기서 핵심은 "개성"입니다. 대형기획사에서 전문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 받을수록, 목소리의 개성은 사라져만 갑니다. 안정된 호흡과 발성을 얻는 대신, 누구의 목소리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고 유사한 목소리들이 되어 버리죠. 하지만 일본 솔로 가수들은 특이하게도, 그런 식으로 노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목소리의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겁없이 고난이도 파트를 해치워 버립니다.
<란마 1/2>의 작가인 다카하시 루미코의 초기 작품인 <시끌별 녀석들(우루세이 야츠라)>의 최신 TV판이 얼마전에 나왔습니다. 그 OST를 메종드가 담당했는데, 아스미와 야마가 각각 참여해서 불렀습니다. 아, 끝내줍니다. 그냥 죽여줍니다. 하지만 아스미의 팬인 제가 처음부터 자지러질 수밖에 없었던 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이날 지하철에서까지 2시간 내내 들었던 <요와네하키(ヨワネハキ, 약한 소리 뱉기)>를 아스미가 부르면서, 메종드의 공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공연 영상이 없어서 다른 라이브 영상으로 대체합니다. 저는 너무 좋아서 그냥 쓰러졌습니다. 그녀의 단독 콘서트가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소이얏사, 소이얏사(그러고 보니까, 그러고 보니까)" 파트를 그곳에 모인 청중이 떼창한 것을 보니, 기대할 법도 합니다. 하지만 합동 콘서트라도 좋으니, 내년에 다시 한국을 찾아주었으면 합니다.
"메종데" 객원가수 4명의 공연이 모두 끝나고, 아스미의 단독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PAKU(덥썩)>을 두 번째 곡으로 열창했습니다. 아마 현장에서 그녀의 무대를 지켜봤던 분들은 그녀의 무대 퍼포먼스가 얼마나 자유로우면서도 활달한지 느끼셨을 겁니다. 비록 프롬프터를 참조했겠지만, 그녀는 긴 한글 문장을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읊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무대까지 깔끔하게 마친 채, 그렇게 아스미는 빨간 신발을 덜컹거리며 떠났습니다.
이제 원더 스테이지에서 "남성 가수" 데이브레이크의 공연을 볼 차례입니다. 저는 원래 이 타임에 제육컵밥을 먹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메종드 마지막 공연을 장식한 야마(yama)의 카리스마에 반해, 1시간을 리벳 스테이지에서 벌 서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앞에서 6열 정도에 자리할 수 있었죠. 물론 민망할 정도로 앞뒤 사람과 밀착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 드디어 야마의 첫 한국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란 머리에 눈을 가린 채 츄리닝을 입고 무대 위에 올라선 조그마한 체구의 그녀는 별다른 제스처도 없이, 오직 메탈 내음 가득한 강렬한 목소리 하나 만으로 1시간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노래 자체도 좋지만, 일단 그녀의 가창력은 넘사벽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 이런 방식으로 노래하는 여성 솔로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좋았고, 더욱 아쉬웠습니다.
오늘 원더리벳 페스티벌을 찾은 일본 뮤지션들이 멘트를 생략한 채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 일관한 점을 감안한다면, 하루 동안 S급 일본 솔로 가수 단독 콘서트를 5개 정도 본 셈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놓쳤던 사쿠라자카46이나 기타 남성 가수까지 포함하면 단독 콘서트의 숫자는 늘어나겠지요. 그들의 내한 콘서트를 제가 간다고 해도, 오늘 부른 곡들 이상을 알고 갈 것 같지가 않습니다. 정말로 2024년 가성비 끝판왕, 최고 수준의 페스티벌이 [원더리벳 2024]가 아닌가 합니다. 장기적인 한국 팬 확보를 위해서, 이들이 염가로 와준 것은 아닌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레오르와 마찬가지로, 야마에게는 여성 팬들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어이!어이!"하는 구호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응원하는 남성 팬들 또한 하나 가득이었습니다. 한국 공연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반드시 한국에 돌아오겠다고 관객들과 굳게 약속했습니다. 얼굴 없는 가수 "아도(Ado)"와 "즛토마요"는 이미 성황리에 내한 공연을 마쳤죠. 내년에 꼭 야마를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자, 이제 한국의 제이팝 팬들이 사랑하는 오늘의 헤드라이너이자 끝판왕, 유우리(yuuri)의 마지막 무대를 즐길 차례입니다. 오후 2시 전에 입장해서 7시간이 넘게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방방 뛴 40대 아재입니다. 야마(yama)의 무대를 끝까지 지켰기에, 어차피 유우리의 원더 스테이지 공연에서 앞 열에 자리하기란 불가능입니다. 멀찌감치 뒤에서 그를 지켜보는 편이 낫겠죠.
개인적으로는 야마나 레오르의 무대를 유우리의 그것보다 좋아합니다. 철저히 개인 취향입니다. 하지만 유우리는 역시 유우리였습니다. 오늘 반복해서 말하는데, 유우리는 과거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날것의 진솔하고 거친 목소리로 1시간 동안 터질 듯한 열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메이저 밴드 보컬들은 목소리의 부드러움이 여성 가수 못지 않습니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만" 들리는 편향된 가요계는, 분명히 다양성을 원하는 팬들에게 불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원더리벳 페스티벌을 찾은 일본 가수들은 모두 날것의 소리를 보여주었습니다. 틱톡 바이럴을 위해 리듬과 가사와 안무를 짜맞춘 일회성 소비곡은 여기에 없었습니다. 정말로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진솔한 가사를 생목으로 부르는 그 날것의 짜릿함을 오늘 유우리의 무대에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유우리는 무대 스크린에서 일본어 가사와 한글 가사를 병행하는 영리함을 보여주었는데요. 성장해 가는 주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반려견의 목소리를 담은 <레오>를 보고 들으며, 저도 모르게 울컥했습니다. 제이팝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곡 <베텔기우스>를 그가 부르기 시작했을 때, 정말 심장이 터질 듯했습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가수들이 <베텔기우스>를 커버했으며, 그는 또 얼마나 많은 라이브 영상을 남겼던가요. 하지만 피를 토하는 듯한 그의 라이브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꿈과 가능성은 돈을 포함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내용의 <빌리밀리언(billimillion)>이 오늘의 마지막 곡이었습니다. "힘내(간바레)"를 끊임없이 외치며, 그는 떼창을 부르는 관객들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대혐오의 시대, 희망이라는 단어를 우습게 알며 냉소를 지혜롭다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어리석게 들릴 수도 있는 그 한 마디, "간바레." 하지만 "간바레!"를 담은 히트송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그가 정말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유우리의 곡들은 모두 멜로디가 분명해서,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떼창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서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확실히 라이브 무대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내년 5월에 내한 공연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스크린에 띄운 채, 유우리는 팬들과 작별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원더리벳 페스티벌이 2025년에도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떴죠. 아니, 이런 라인업을 구성했는데도 적자가 안 난 모양이지? 소니(SONY)가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홍보용으로 페스티벌을 지속할 예정인가? 오히려 좋아! 내년에도 딱 대! 블라인드 예매에 도전한다! 그런데 올해에도 1분 만에 컷 되었다던데, 손이 느린 아재가 가능할까? "간바레!"
[원더리벳 2024]가 열린 대화역 킨텍스와 제가 사는 마들역 근처는 수도권 정반대 편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죠. 운이 좋아서인지, 자정이 되기 전에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에서 마젠타가 개인방송을 시작한 바람에,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원래 자동녹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녹화해놓은 뒤 다음날 시간이 날 때 보곤 하는데, 콘서트를 보고 와서인지 결국 라이브로 보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시요밍 못지 않게 호날두 흉내를 잘 내었는데요. 메시 유니폼을 입고 호날두 흉내를 내는 괴랄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축구 유튜버 감스트가 그렇게 했다면 뒷감당을 하기 어려웠을 터인데, 역시 마젠타는 못하는 게 없는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 그녀는 다음날인 11월 11일, 특정 회사가 만들어낸 "빼빼로 데이" 대신 "가래떡 데이"로 팬들에게 인사한 뒤 결국 "빼빼로 쿠폰"을 선물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하면 팬들과 재미있게 놀까 온종일 궁리하는 "젠타맘" 답습니다.
[원더리벳 2024] 페스티벌은 작년과 달리 덩치를 크게 키워, 한-일 공동 음악 페스티벌로는 최대 규모로 펼쳐졌습니다. 올해가 실질적인 첫 회이며, 내년에도 화려한 라인업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저는 올해 제가 유료로 다녀왔던 [카스쿨 페스티벌], [현대 다빈치 모텔], [원더리벳 페스티벌] 등을 내년에 반드시 다시 찾을 것이며, 올해 사정상 가지 못했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또한 내년에는 QWER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찾고자 합니다. 물론 이 모든 행사에 QWER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이겠죠. 개인적으로 일본의 [섬머 소닉 페스티벌]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원더리벳] 3일권만 사면 충분히 대리만족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는 제이팝과 QWER이기 때문이죠. 해외 투어를 꺼리던 "요네즈 켄시"마저 내년 최초의 아시아 투어에 한국을 포함했으니, 어지간한 제이팝 스타의 단독 콘서트를 국내에서 모두 접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됩니다. 제이팝 팬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죠. 물론 QWER은 2025년에 세계로 무대를 조금씩 넓혀나갈 것이고요. QWER 팬들은 앞으로 더 큰 도파민이 터질 일만 남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아재 바위게는 앞으로도 본업 이외의 취미 생활에 QWER 비중을 높이며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고자 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