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결국 진아(眞我)는 누가 봐도 무책임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지도교수는 프로포절 준비가 끝났으니 심사교수에게 연락을 하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진아는 자신이 없었다. 슬라이드를 몇 번이고 고쳤다. 부족해 보이는 부분을 고치려 책을 읽고 논문을 읽으면 고칠 부분이 끝도 없이 나왔다. 그렇게 고친 슬라이드를 가지고 두 번의 예행연습마저 끝이 나고, 정말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진아는 여전히 미루고 싶었다.
어떤 날은 무기력했고, 어떤 날은 공부 자체에 대한 저항감이 일었다. 어떤 날은 조금 열심을 부려 조그마한 성과를 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돈을 버느라 공부 자체를 잊기도 했다. 별 다를 것 없는 하루가 가고, 침대에 누우면 조그마한 불안이 밀려왔다. 계획한 것을 마무리 짓지 못한 죄책감은 다음 날 아침 더 큰 불안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다 못해 답답함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들도 이어졌다.
진아는 열심히 명상을 했다. 게으름을 피운 날이면 여지없이 밀려오는 자기 비난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자기 비난에 맞서 싸우지 않으려면 Headspace 명상 어플 속 쿨내 진동하는 영국 총각의 말을 따를 수밖에! 다행히도 처음에는 제법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 적어도 금단현상처럼 총각의 목소리에 의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명상 어플을 찾는 주기가 하루 한 번에서, 두 번으로, 그리고 네 번에서 여덟 번으로 늘었고, 급기야 아무 위안조차 되지 못하는 지경에 도달하고 말았다.
상담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심리학을 전공한 탓에 가까운 친구들 모두가 전문가였다. 친구들은 진아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았다. 발 빠르게 다리를 놓아 어느 한 상담 전문가 선생님을 만나도록 했다. 그런데 정작 모든 것이 준비되자 진아는 덜컥 겁이 났다. 상담을 시작하고 증폭된 감정들로 하루, 이틀 흘려보낼 날들이 미리부터 두려웠다. 단단히 응어리진 무언가가 어떤 형태로든 터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더 곪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 한 고비를 넘기면 널뛰던 심장박동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터질듯한 불안과 초조가 결국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결국 몸을 더 빨리 놀리고 엉덩이를 더 오랜 시간 붙이고 앉아 있으면 해결될 것을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싶었다. 스스로를 나락으로 끌어내리던 각종 신체 반응들이 게으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에 다르자 진아는 자기 모멸감에 휩싸였다.
그때부터 진아는 더 많은 순간 불편감을 느꼈다.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에서도 그랬고, 토요일마다 가던 봉사활동에서도 그랬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나 늘 만나던 사람이나 불편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툭하면 자아가 두 동강이 났다. 구체적인 순간에 행동하는 자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자아로 쪼개어져 어느 한순간도 온전히 살지를 못했다. 결국 진아는 백기를 들었다.
2019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