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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영 Apr 03. 2019

01. 너무 슬픈 사춘기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진아는 첫 번째 상담 회기 날짜가 잡히고 마음이 약간 들뜨는 것을 느꼈다. 자기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고 나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조금 축소시켜 바라보는 혜안이 생길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하루하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날짜를 헤아리며 감정을 분리시켜 스스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관찰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마치 '훌륭한 내담자 되기'가 또 다른 할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어 진아는 쿠션을 등에 대고 앉았다. 선생님은 진아를 '진아 님'이라 불렀고, 진아를 몇 번 봤던 것처럼 적당히 친근하게 '오늘 하루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진아는 '진아 씨'라고 불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진아 님'이라는 호칭이 어쩐지 마음에 쏙 들어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담이 늦은 밤 9시에 진행되어 조금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편하게 기다리고 있었노라 답했고, 그렇게 선생님과 진아 사이에는 질문하고 답하는 핑퐁 게임이 시작되었다.


질문은 간결했고, 대답은 그에 비해 긴 시간을 요했다. 무엇이든 자세히 말하기 좋아하는 진아는 케케묵은 학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여러 차례에 걸쳐 긴 시간 동안 생각해온 이야기도 있었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에 뻔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차 검열해야 하기도 했다. 다행히 너무 긴 시간 생각해야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은 많지 않아 어렴풋 박자와 리듬을 맞추며 핑퐁 게임은 이어졌다.


진아는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다 '여전히 사춘기 같은'이라고 표현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어떤 부분이 특히 그렇게 느껴지느냐고 되물었다. 음... 진아는 눈을 위로 치켜뜨며 생각을 모아보려 했지만, 순식간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 질문이 너무 진부하다고 느꼈는데, 대답이 당연하게 나오질 않자 당혹감이 밀려왔다. 진아는 사춘기 고유의 특성을 되짚으며 그 가운데 자기 상황에 맞는 것들에 번호를 달아 대답했다. 첫째, 아직까지도 공부를 선택한 이유를 엄마에게서 찾고 있어요. 둘째, 이제 몇 년 후면 마흔인데 진로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아요. 그리곤, 왈칵.


첫 상담을 시작한 지 20분이나 흘렀을까. 셋째 이유를 어렵사리 덧붙였다.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아! 순간적으로 진아는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스물셋에 받았던 상담과는 뭔가 다르길 원했는데 결국 또 엄마라니. 또다시 등장한 엄마의 무게감에 진아는 앉아 있는데도 몸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150센티도 안 되는 키에 체중도 40을 겨우 넘기는 엄마가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다고.


눈물을 펑펑 쏟고 진아는 생각했다. '사춘기' 만큼 슬픈 단어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고. 그것은 곧 불완전함에 대한 고백, 완전함을 버리고 충만함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 그리고 세상을 향해 온갖 생채기를 꺼내어 보이겠다는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내어보이는 만큼 더 빨리 아물 것을 알기에 아프지만 견디어 보겠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기도 했다. 순간 진아의 머리 속에 알 수 없는 영상이 또렷이 새겨졌다. 상처 투성이의 한 소녀가 햇살이 꽉찬 운동장 흙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숨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도 입가에는 달리기를 완주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미소가 조금씩 번지는 듯 했다.  


선생님은 진아가 느끼는 불안함의 근원을 보다 입체적으로 탐색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자아의 개념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셨는데 '전체로서의 나''부분들 속의 나'에 대한 이야기였다. 도중에 잠깐 'whole' 이라는 단어가 지나갔는데 왜 그런지 모르게 진아는 그 부분에서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울 것도 같았고, 알 수 없는 위안을 받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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