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영 Apr 08. 2019

02-1.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진아는 밀린 설거지를 하다 말고 급히 노트북을 펼쳤다. N과의 관계에 대해 이제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저 멀어지는 것 말고 또 다른 결말이 있을까 싶었다. 이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불편감이 최고조에 달해 진아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고, 결국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든 멀어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을 참고 삼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무언가 표현을 한다면, 아마도 N 쪽에서 먼저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결국 멀어지는 뻔한 결말을 두고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신을 경계 짓는 노력을 해야 하는지 물음표가 저절로 그어졌다. 


그러다 불현듯 노트북 앞에 주저앉은 것은, 막무가내로 떠오르는 이들의 이름을 적기 위해서였다. 불편감으로 엮어진 관계가, 그리고 불편감으로 틀어진 관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냥한 G선생님의 목소리로 시작해, 진아의 옛 애인과 결혼한 E,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이 멀어진 진아와 이름이 같았던 진아가 차례로 떠올랐다. 어떤 이름 위에는 박박 소리가 나도록 줄을 그어버리고 싶기도 했는데, 그 순간 지난 상담 때 N에 대해 "재수 없어요"라고 말했던 자신이 떠올랐다. 


그 이름들은 모두 한 사람인 양 진아에게 똑같이 친절했다. 진아에게 먼저 다가왔고, 진아가 어떤 친밀감을 느끼기도 전에 무언가를 요구했다. 누군가는 진아의 시간을, 누군가는 진아의 경력을, 또 누군가는 마음까지도 내어 달라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이름들에 진아는 차마 줄을 그어버릴 수가 없었다. 불편감이 일었지만, 무시했다. 불편감이 일었지만, 더 넓은 사람이 되지 못한 자신을 채찍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 끝에서 남은 것은 '단절'이었다. 그들은 진아의 이름에 새빨간 펜으로 두 줄을 좍, 좍하고 그어버렸다. 


무기력감 불안에서 시작한 상담이 진아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현실의 문제에서 갑자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불안이 스며든다. 인생은 고행이라던데, 정말 뭐 하나 쉬이 끝나지는 법이 없다. 


2019년 4월 6일   

작가의 이전글 02. 나의 경계 짓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