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다섯 번에 걸친 상담이 끝나고 진아는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상담 선생님은 사형선고를 받은 해괴망측했던 그 꿈에 대해 "핵심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엄마와의 관계"인 것 같다고 했지만, 이 상담에 엄마를 끌어들이고픈 마음이 조금도 없던 진아에게 그리 달가운 해석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진아 자신도 알고 있었다. 뒤엉킨 실타래의 끝에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걸. 그러나 여기에서 '부모'란 진아 자신의 엄마 N과 아빠 I로 특정 지어지는 개인이 아니라, 보편적인 수준에서 '부' 역할과 '모' 역할을 하는 성인을 지칭했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으므로. 따라서 완벽한 아이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진아는 특정 개인인 엄마 사람 N과 아빠 사람 I에게 절대로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성숙한 성인이라면 이 정도쯤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엄마를 핑계 삼는 것은 분명 더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진아의 하루는 상담을 시작하기 전으로 완전히 회귀했다. 해야 할 일들을 느릿느릿하다가, 식사에 열중하다가, 또다시 책상에 앉았다가,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보다 만 소설책을 들췄다가. 그러다 보면 주변이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어둠과 함께 후회도 밀려왔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하며 한숨을 몰아 쉬면 새벽 1시가 넘고 2시가 넘어도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과는 조금 다를 거라는 기대로 억지로 눈을 붙이면 불안감에 꿈을 몇 개나 꿨다. 수면의 질이 그렇게 떨어져도 아침 7시가 되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몰려와 침대에 몸을 누위고 있기가 어려웠다.
꿈을 꾼 것인지, 언어의 생각을 대신해 뇌가 만들어낸 영상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사그락 거리는 이불 소리가 점차 아스라해지며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과 통화하던 진아가 등장했다. 어느 금요일 저녁, 책상 앞에 앉아 억지로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진아는 저녁 먹고 내일 시험공부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에 묻어 있던 자랑스러움은 "시험이 벌써 끝났습니까?" 하는 당혹한 떨림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했다.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인터폰에 연결된 색이 누렇게 바랜 무선 전화기를 든 아빠가 벌게진 얼굴로 들어왔다.
이후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도,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도, 진아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토요일인 다음 날은 학교 대표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게 되어 아침 일찍 교육청으로 가야 했는데, 진아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엄마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던 킁킁거리는 '짓거리'를 일부로 몇 번이나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진아가 '킁' 하고 헛기침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낼 때마다 '심리적인 불안'의 표출이라며 스스로 잘 컨트롤하라고 했다. 교육청까지 가는 차 안을 킁킁 소리가 가득 메워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킁. 나 지금 많이 불안해요. 킁. 나 많이 위축되어 있어요. 킁. 나한테 자꾸 공부 잘하는 아이를 기대하지 마세요. 진아는 엄마가 알아주길 바랐지만, 냉랭해진 공기 말고는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었다.
나중에 심리학을 전공하게 되면서 진아는 그것이 '음성틱장애'였다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다. 이미 그런 증상은 모두 사라지고 난 다음이었지만 진아가 초점을 맞춘 건 어쩌면 엄마가 그 당시 진아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스물셋의 진아는, 그런 엄마가, 알면서도 무턱대고 덮으려던 엄마가, 아니 더 정확히는 15살 중학생에게 '스스로 잘 컨트롤' 하며 진아의 위축된 자아가 자연 치유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는 엄마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단언컨대, 그것은 진아에 대한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므로, 원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무한 감사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엄마의 믿음 속에서 진아는 늘 그렇게 부풀어져 있었다.
56명 중 26등을 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도 사실 진아는 아무렇지 않았다. 26은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초등학교 때에 비해 형편없는 숫자였지만,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뭐가 두려웠는지 성적표를 부엌 식탁 위에 올려두고는 일찌감치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퇴근한 엄마와 아빠가 성적표를 여는 소리에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사지가 마비되어 일어날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다. 그리고 진아는 그날 태어나 두 번째로 아빠에게 뺨을 맞았다. 이유는 아빠가 '약이 올라서'라고 했다. 아마도 그날부터 성적은 진아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게 되었다. 부모의 만족을 위해서, 똑똑한 부모의 명예와 자존심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다리가 저리도록 무릎으로 앉아 있었다. 어린 진아는 철석같이 믿었다. 엄마와 아빠가 화가 난 건 진아의 성적에 만족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진아가 노력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것이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가 그렇듯, 진아의 부모 역시 '노력'은 곧장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는 이상한 등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알아차리기에 진아는 너무 어렸다. 진아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성적이 나빠도 부모가 화내는 일은 없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때부터 진아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도 시험 기간이 되면 책상을 지키고 앉아 있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교과서 밑에는 도서대여점에서 500원씩 주고 빌린 소설책이 늘 깔려 있었다. 엄마, 아빠가 지나치게 방을 들어온다 싶으면 책을 가지고 화장실로 가 변비인 척을 했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은 괴로움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앉아 있다고 성적은 조금 올라 다음 시험에서는 18등을 했다. 물론 누구라도 예상했겠지만 혼나는 것은 똑같았다. 여전히 진아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배신감이 느껴졌다. 18.
괴로운 시간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려고 진아는 영양가 없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만약 시험이 월요일부터 시작해 5일 동안 보는 일정이라면 수요일부터 시작해 4일 동안 본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시험을 보고 일찍 끝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자유를 만끽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KFC도 가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공원에 가서 신나게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 이틀간의 자유를 위해 시험이 진짜로 끝난 금요일 하루쯤은 책상에 앉아 있어도 좋았다. 물론 금요일 밤 걸려온 담임 선생님의 전화로 그 생활도 청산해야 했지만.
이불을 털고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셨다. 흐린 날씨가 결코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좀 생산적인 하루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러다 보면 열다섯에 시작한 지긋지긋한 미루기도 이 해가 저물기 전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진아는 또다시 희망을 걸었다.
2019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