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다리다.
그냥 건너되, 그 위에 집을 짓지는 마라.
-인디언 속담-
내가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많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반드시 지금 당장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열심히, 그리고 미련 없이 살았으니
삶에 큰 집착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는데
듣는 이에 따라서는 저 말이 끔찍하게 들렸나 보다.
보통 죽기 전에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버킷 리스트'라고 부른다더라.
그렇게 거창한 목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릴 적부터 내가 꿈꿔온 삶의 장면이 몇 가지 있다.
1. 미국에서 공부하기
2.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을 갖기
3. 칠레 아타카마 사막 가기
4. 스카이다이빙 하기
5. 자서전 내기
6. 5개 국어 마스터하기
...
...
...
이럴 수가.
감사해야 할지, 아니면 이렇게 해보고 싶은 일이 없음에 웃어야 할지...
기억을 더듬어서 어릴 때 원하던 장면을 떠올려 보려 했으나,
내가 원하던 장면의 상당 부분이 이미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뭐야, 의외로 하고 싶은 일이 없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미 상당 부분을 실현해버린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10대의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어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홀로 독립하고 싶었으며,
살면서 5개 국어를 마스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혼자 유럽 배낭여행을 가보고 싶었고,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내일 떠날 비행기 표를 사서 여행을 가고 싶었다.
번지점프도 하고 싶었고,
외국 어느 바닷가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싶었으며,
나를 아무도 모르는 도시를 자유롭게 걷는 꿈을 꾸었고,
바닷가에서, 공항에서 편지를 쓰고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했으며,
최대한 많이 여행을 다니고 싶었다.
늘 아쉬움과 원망이 뒤섞인 마음이 응어리져 있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었고
아주 오래전 피아니스트의 꿈을 가졌을 때나 가능했던 장면이었지만
내 이름으로 연주회도 열고 싶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낭만적인 장면을
누군가와 연출해보고 싶었고,
밴드 공연도 꼭 해보고 싶었다.
공부도 원 없이 해보고 싶었고,
정말 바빠서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사는 삶을 동경했었다.
어느덧 내 나이가
소녀의 풋풋함에서 거리가 많이 멀어진 이 시점에서,
나의 소망들을 되돌이켜보니
많은 희망들이 실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장면들은 내가 예상한 장면이기도 했고,
어떤 장면들은 내 인생에서 실현할 수 없을 장면이라 생각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실현해버린 장면이기도 했다.
내 소망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과거가 되어 있었다.
나에게는 아직도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되길 바라는 장면이 많다.
막상 적어보라니 선뜻 떠오르진 않았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지금 가장 바라마지 않는 장면이
나머지 소소한 장면들을 모두 잠식시켜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오늘의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며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바라던 일이 실현되었다는 점을 깨달을 때,
나는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그 일이 실현된 이후, 내 삶이 작든 크든
유의미한 변화를 거치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
언젠가
인생을 다리 위를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살되,
그 다리 위에 집을 짓지는 말라는
인디언 속담을 읽고
그 글귀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집착이 사람을 얼마나 시들게 하는지,
얼마나 피 말리게 하는지
얼마나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내가 보기 싫어서
사람이든 대상이든 목적이든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때로는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아보기도 했고,
때로는 내가 당연히 바라도 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만약에'를 생각하며 부정적인 경우를 미리 대비하기도 했다.
흔한 말로 '사서 걱정한다'라고 하는.
그 모든 경우 나 자신의 마음가짐을 합리화시키는 말은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
였지만,
역설적으로 나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집착과, 집착이 만들어 낸 기우로 물들어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
내 머리를 맑게 해 준 또 다른 인디언 속담 중에
'그렇게 될 일은 결국 그렇게 된다'는 글귀가 있다.
그래.
그렇게 될 운명이면 그렇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원하는 일이 실현될지 아닐지에 대해 걱정하고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과 실현성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행동할 것이라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내 소망을 현실이 되게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분명히 하라.
그리고 난 후,
그 실현에 대해 확신을 가지면
그렇게 될 일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