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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Jan 06. 2023

나의 꿈은 현모양처

"작가가 되고 싶어요."

미국 유명 공대를 다니던 아들이 전공과목을 변경하겠다고 선언했다.

입학 후 기숙사에서 한 학기 생활하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잘 적응한 줄로 알고 안심하고 있었다. 워낙 좋은 친구가 많아 방학이 되어도 한국 방문은 하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의 게스트 룸에서 한 달여 지내고 다시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여름휴가를 이용해 미국에 방문한 우리 부부에게 아들은 정말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의 대학교 주변의 꽤 괜찮은 분위기의 식당에서 막 음식 주문을 마친 참이었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힘드니 컴퓨터 사이언스로 바꿔 보겠다고….

우리는 대신해줄 수 없는 공부이니 아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오랜만의 가족 상봉의 기쁜 시간에 그동안 속 한번 안 썩이고 잘 적응해준 감사한 마음으로 즐거운 대화와 맛있는 식사와 격려로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학기 동안 바꾼 선택과목의 공부를 해본 아들은 아예 공대가 아닌 필름 전공으로 바꾸겠다고 마음을 정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의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미국에서 공대를 졸업한 초임 연봉이 10만 달러부터인데? 작가를 해서 미국에서 먹고살 수는 있을까?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인해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하면서 아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고등학교의 IB와 TECH 교육과정 입학시험을 보았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본 시험이었는데 놀랍게도 두 과정 모두에 합격하여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0교시부터 시작하는 IB, AP 과목들을 신청하여 영어로 온종일 수업을 듣고 발표하고, 과제를 해야 하는 중압감을 잘 견디고 열심히 공부해서 시 로터리 클럽 TOP100에 들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Salutatorian(차석)으로 졸업하였다. 공부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졸업식 Awards ceremony 날까지 그 정도로 성적이 우수한지는 모르고 있었다.

공부만으로는 미국 입시에 성공할 수 없다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학원에서 실시하는 각종 입시설명회를 열심히 다니며 입시 정보를 수집했는데 아들은 한 번 가본 학원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는 가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스스로 공부하니 성적은 더 잘 나왔고 대신 캘리포니아 학생 의회의 임원인 테크 디렉터로 활발히 활동하며 여름 학생 캠프에서 카운슬러로 활동도 하고 각종 행사를 기획하여 함께 진행하는 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길렀으며 지역의 후배들을 가르치는 멘토·멘티 클럽과 봉사 클럽의 회장 역할도 해내면서 congressional award도 수상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 기간이 만료되어 입시 결과만 남은 고등학교 시니어 2학기에 아들을 홈스테이에 남겨두고 우리 부부는 한국으로 돌아와 각자 복직하여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빈 둥지 증후군도 혹독하게 경험하였으나 혼자 지내느라 더 힘들 아이를 생각하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아들이 유명 대학의 공대에 합격하여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으며(미국은 넓은 나라이다 보니 거의 모든 학생이 집에서 멀리 독립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일 년 후에는 마음 맞는 친구와 셋이 학교 근처 아파트를 얻어서 독립하게 되었다.

미국에 갈 때는 부모로서 데리고 나갔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부모 맘대로 데리고 들어올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아들은 성인이 된 것이다. 

대학 공부만 착실히 하고 졸업하면 등 따숩고 배부르게 어느 정도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리라 생각했었던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단다.

그런데 꿈을 찾았다고 마냥 응원할 수 없는 것은 나도 살면서 내 꿈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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