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다고 반드시 못 파는 건 아니다.
경쟁사 보다 우리 제품이 비쌀 때 판매 전략은?
20년 전쯤 필자는 서버와 노트북 제품으로 유명한 글로벌 IT 회사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때 부장쯤 되시는 선배분들이 가끔씩 일이 힘들 때마다 한숨을 쉬며 옛날 타령을 좀 하셨는데, 본인이 어렸을 때는 제품이 최종 소비자에 납품이 되기까지 많게는 여섯 개 유통 대리점을 거쳐 유통이 됐다고 했다. 그러니 한 대리점이 최소 10%씩 마진을 취했다고 가정하면 도대체 가격 거품이 얼마나 많이 끼였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지금은 그저 옛날 이야기 일 뿐이다. 직거래가 보편화 된 지금은 최소의 마진으로 버텨도 물건을 팔기가 어렵게 됐다.
너무나 경쟁이 치열하다. 무한 경쟁, 가격 경쟁, 최저가 경쟁으로 규모가 작은 소상공인들은 시장 상황이 언제나 어렵다. 가격이 비싸다면 품질이나 성능이 우월해야 그나마 경쟁이 될 텐데, 수입 벤더사의 제품을 똑같이 취급하는 경우라면 규모의 경제로 밀어 부치는 큰 회사들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또한 동일 제품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어, 가격 이외에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난감하다. 특히 유통업에서는 가격 경쟁이 더욱 잔혹할 수밖에 없다.
이 어려움을 타개할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우리의 가격이 경쟁사 보다 비쌀 때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렵기는 하지만 방법이 없지는 않다. 납품 받은 제품을 그대로 되파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작은 기업들이 생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3가지를 바꿔보라. 즉 고객을 바꾸거나, 제품을 바꾸거나, 파는 방식을 바꿔보자. 그러면 뜻밖의 길이 열릴 것이다. 남과 다르게 파는 것. 바로 부가가치를 만드는 방법이다.
1. 다른 고객을 찾아라.
고객이 달라지면 가격도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냥 평범한 종이 한 장도 사무용이나 가정용으로 쓰이면 10원도 안 하겠지만, 그것이 미술용으로 쓰이면 100원으로, 의료용으로 쓰이는 순간 1,000원 혹은 그 이상으로 둔갑한다. 특수 목적으로 쓰일 때 종이 한 장의 가격은 원가 대비 얼마로 측정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가격은 그것을 소비하는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가격은 고객이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필자는 한때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논현동(論峴洞)은 옛날에 논고개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져 있다 하여 이런 지명이 붙었다는데, 지금은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강남의 한복판으로 탈바꿈되었다. 이곳은 가구, 패션, 그래픽 디자이너 등 30대 여성 분포가 상대적으로 많이 근무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지하철 탈 때 직장인 여성들 틈에 끼여 출퇴근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 날 정도다.
아무튼 이 동네에 아주 작은 카페 하나가 있었는데 필자의 눈에 굉장히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앉을 의자는 하나도 없고, 대신 원두 볶는 로스팅기만 매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은 필자가 “여기는 테이크 아웃 손님만 받나 보죠?”라고 묻자, 그게 아니라 인근 디자인 회사에 직접 볶은 원두를 납품한다는 답을 들었다. 워낙 디자이너들이 커피 맛에 민감하고 직업의 특성상 야근이 많고 커피 소비량이 많아, 매번 커피를 사 먹어서는 감당이 안된다는 귀띔.
같은 동네에서, 같은 카페를 운영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질 수 있다. 카페를 하더라도 여러 종류의 고객을 상대로 장사할 수가 있다. 회사를 상대로 장사를 하니 당연히 이윤은 더 남는다. 직원들이 야근하며 마시는 커피 값을 감히 어떤 회사가 아끼겠는가? 남들이 모두 개인 고객을 상대할 때, 이 카페는 기업 고객을 상대로 원두를 팔고 있었다.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면 가격 문제를 의외의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내 고객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섣불리 판단하지 말자.
2. 제품의 범위를 확장하라.
제품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미할까? 단순히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드웨어 제품 만을 의미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주문한 제품이 배송지를 떠나 고객에게 배송되기 바로 직전의 마지막 거리 내지 순간을 위한 배송을 뜻하는 ‘라스트 마일(Last Mile)’까지도 제품의 범위 안에 든다. 따라서 고객이 생각하는 가격 또한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고객은 배송 시간, 애프터 서비스, 결제 조건 등을 포함한 고객 구매 경험 전체를 가지고 가격을 따진다.
식품을 주로 판매하는 마켓컬리(www.kurly.com)는 다른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20% 정도 비싸다. 물론 여기에서만 유일하게 파는 제품도 일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서도 파는 제품을 여기서도 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켓컬리에서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라스트 마일에 있다. 밤 11시 이전에만 주문하면 바로 다음 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도착한다. 출근하면 집에 아무도 없게 되는 맞벌이 혹은 1인 가정들에게는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20% 이상 비싸게 살 의향이 생긴다. 이들에게는 출근하고 나서 빈 집 앞에 신선 식품을 툭 하고 던져 놓고 가버리는 다른 쇼핑몰들은 전혀 선택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마켓컬리는 또한 모든 제품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온전한 모습 그대로 배송이 된다. 식품의 특성상 포장이 매우 중요하다. 과일이나 채소는 가혹한 택배 배송 과정에서 파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켓컬리의 박스 내부와 외부는 압도적으로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온전하다. 비싸도 마켓컬리를 선택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게다가 고객 응대는 365일 운영된다. 소위 ‘라스트 마일’이라고 하는 소비자 구매 경험을 개선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3. 파는 방식을 바꿔라.
파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조금 더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웅진 윤석금 회장의 정수기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비싼 정수기를 사겠다는 소비자는 거의 없게 되자, “어차피 팔리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빌려주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렌탈 사업을 착안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높은 가격 때문에 정수기 구입을 주저했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2013년 국내에도 그림을 렌탈 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몇 천만원에서 몇 억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그림을 굳이 사지 않고도 일정 기간 빌려 집에 두고 감상할 수 있는 ‘미술품 렌탈’ 서비스다. 그림이라는 것은 미술 애호가가 아니고는 선뜻 구입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대체로 비싸기도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 그림을 산다는 게 아직은 어색하고 막상 난해하기 때문에 렌탈로 가볍게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집카(Zipcar)도 마찬가지 논리다. 카 쉐어링(car-sharing) 비즈니스의 시조새 격인 집카 이전에는 무조건 하루 단위로 렌트를 해야 했지만, 집카는 시간 단위로 쪼개서 대여를 해 주었다. 지금이야 우리 나라에도 쏘카와 같은 카 쉐어링 서비스가 일반화되었지만, 1999년에 시작한 집카는 당시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휴대폰으로 손쉽게 예약하고, 주유를 해야 할 의무도 없고, 보험 가입도 필요 없는 서비스 분명히 같은 렌터카지만 그 서비스의 형태는 많이 다르다.
경쟁사 보다 우리 제품의 가격이 비싸다면, 품질이 좋거나 성능이 우월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기는 쉽지 않다. 가격 차이는 규모의 경제 싸움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럴 때는 경쟁사와 맞상대 하기 보다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즉, 타겟 고객을 바꾸거나, 제품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파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몇 십년 동안 변화하지 않고 똑같은 일을 계속해 왔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세상이 변했는데 어떻게 한 가지 일을 몇 십년이 넘도록 할 수가 있는가? 더 늦기 전에 지금 변해야 한다. / 글: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대표 컨설턴트 http://startupsal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