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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월여자 Oct 02. 2020

해월 여자

그렇게 나는 태어났다

1988년 11월 13일, 나는 추운 겨울 차가운 바다로 태어났다. 이번 생에서 어떤 고苦를 겪어야 할지 이미 예정이라도 한 듯 우주는 나에게 추운 시간과 공간을 설계해주었다.


우주의 좌표를 받아 정확히 무진년 계해월 임신일 나는 엄마의 배를 갈라 비집고 세상 밖으로 나와 이 세계에 태어나게 되었다. 여느 사람들과 같이 나도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혹자는 내가 부모에게서 받은 그러한 사랑이 평범한 가정에서 받는 보편적인 사랑이 아니라 할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에 가득한 어리석고 서투른 사랑도 사랑이다. 그 불은 영원하고 꺼지지 않는 태초의 빛이자 우주의 시작을 알려주는 생명력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어찌 감히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으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가족들도 각자의 여정에 광대한 역사가 있었다.


그 역사에는 그동안 여러 시간과 차원에서 다른 형태로 경험한 아픔과 고통이 녹아들어 있었고, 그 괴로움 속에서 깨달아 체화한 지혜가 현재가 되었다. 


인간이 서로 가는 길이 다르듯 인생이라는 뫼비우스 띠와 같이 반복되는 길을 걸어가며 느끼는 고통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감정이란 깊은 바다와도 같아서 그 심연 속에 인간의 어떤 감정들이 섞여 있는지 분류하는 것은 어렵다. 삶을 살아가며 울고 웃으며 느끼는 이 모든 희로애락은 물감처럼 섞여 오묘한 색들을 창조해낸다.


사랑도 그렇다. 나는 그때 받았던 사랑이 그 시간 그 환경에서 그들이 내게 줄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쉽게 분노하고, 쉽게 울었다. 감정을 느끼는 스펙트럼이 넓은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예민하고 까다로웠다. 의식이 무언지도 에너지가 무언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어린 나는 그 작은 몸으로 나와 우리 집안의 에너지를 다 받아내었다.


처음엔 초조함과 불안으로 내 안에 스며든 씨앗은 깊은 슬픔이 되었고 슬픔에서 생겨난 작은 불씨가 두려움이라는 화로 번져 이윽고 분노와 증오가 되었다. 부모의 싸움과 일관적이지 못한 감정에서 생겨난 에너지는 아이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이되었고 나는 이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내가 잘못한 것이라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에너지를 내 안에 쌓아둘 줄만 알았지 밖으로 내보내는 법을 몰랐던 어린 나는 내 안에 어떤 종류의 화가 자라나는지도 모르는 채 무력감에 시달리며 우직한 소처럼 그저 버티며 견뎌내었다. 내 안이 좀먹고 타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던 나는 오직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다 해결해 줄 거라며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은 차갑고 강한 심장을 주세요. 제 심장이 울어도 아프지 않고 찔러도 아프지 않도록 단단한 다이아몬드가 되게 해 주세요" 그 시절 다섯살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불안에 시달려 미친 듯이 쿵쿵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캄캄한 방 한편에 앉아 귀를 막고 울면서 제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며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영겁의 가혹한 벌을 받는 아틀라스처럼 나를 짓누르는 이 세상이 버거워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중력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고 괴롭게 했다. 그 괴로움은 마치 손과 발이 족쇄에 채워져 어딘가에 묶여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기분이었다.


나는 고통이 싫었다. 나를 옭아매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떼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도리어 내 발은 땅 속으로 푹푹 꺼져 마치 깊은 늪에 빠지는 것 같았다. 빛을 향해 계속 걸었다. 그러나 지긋지긋하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걸어도 빛은 보이지 않았고 내 몸은 점점 딱딱하고 무거워져 갔다.

 



항상 우울의 늪에 젖어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이원성 세계에서는 괴로움의 크기가 클수록, 그만큼 즐거움의 크기도 비례한다.


내가 그런 인고의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혼자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에 위안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줄곧 공상을 하며 상상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며 놀았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상상 속의 세계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도록 나는 그림을 그렸다. 하얀 도화지 위에 연필로 점과 점을 이어 2차원의 선을 잇고, 면과 면이 엉켜 3차원의 도형을 이루고, 여러 개의 단편적인 3차원의 도형들을 하나로 합쳐 도화지 안에 4차원의 시간을 자유로이 창조하고 언제듯 허물 수 있는 無와 有의 신성한 놀이는 나에게 기쁨을 주었다.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 내면의 세계에 집중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신이 되어 텅 빈 공간에 무한한 가능성을 열었다. 상상을 통해 새가 되어 자유롭게 넓은 하늘 위를 날 수 있었고, 고래가 되어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할 수도 있었다.

시간을 늘릴 수 있었고, 반대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도 있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 시간은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내가 우주임을 알 수 있도록 일깨워 주었고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믿음과 신념에는 오묘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다. 이 마법은 백을 창조하기도, 때로는 흑을 창조하기도 한다.


어릴때부터 난 이유는 모르지만 무의식에 언젠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사다난한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스스로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모진 풍파를 견뎌내는 동안 잊고 있던 내 안을 꺼내어 들추어보니 어느새 나의 에고는 다이아몬드 같이 딱딱하게 굳어서 마음이 따뜻하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모를 정도로 차갑게 얼어 있었다.


다섯살의 어두운 밤, 강한 심장을 달라 기도했던 그 믿음은 비록 잘못된 신념이라 할지라도 살기 위해 내가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동아줄이었다.

그 동아줄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불안한 청소년기를 지나는 동안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지만, 내 안에 깊은 어둠이 자라날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

이 이후로도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힘의 역학인 수용과 저항 사이에서 평정과 중도中道를 찾을 수 없었고 널뛰기 위에서 누가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겨루기라도 하는 듯 있는 힘껏 힘을 주며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와 투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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