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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Jan 12. 2017

인도를 노래하다

#38 잠시

잠시(우다이푸르)


잠시라는 말

시작과 끝 사이에

공존하며 머무르는 시간


끝이란 슬픈 말이지만

아름다운 추억과 바꿀 수 있는 말

함께 머물렀다와 같은 말

서로 행복했다의 다른 말


잠시 함께 머물렀다는 것

잠시 옆에 살았다는 것

시작과 끝 사이에 가족 같은 것


 





지난날의 고난과 

시련을 잊지 않으려


꽁꽁 싸맨 이불 틈 사이로 덩그러니 눈만 양보했다


어릴 적 연탄난로

장판이 구석만 누렇게 변한 그곳에

이불이 집중적으로 깔려 있었고

구들장 밑이 뜨뜻한 천국이 아니던가

이불속에 먹을 군것질거리만 가득하다면

사람도 겨울잠을 잘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한참을 지난 뒤엔

동심이란 단어는 고대 유물처럼 희미해진지 오래

현실에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지금엔 

야속하게도 이른 아침의 자전 소음이라도 들리듯 

작용반작용 알람이 정확하다


약속처럼


이불 틈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 올세라

조심스레 뒹굴 거리다


문밖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지금 나는 충분히 비루하고 남루하기에

쑥쑥한 니혼징으로 볼 것이 분명할테다


배낭여행과 여행패션은 같은 길을 걸을래야 걸을 수가 없다

도전하기도 힘든 빨간 양말과 솜이 빠질 곳이 없는대도 

패딩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얇은 패딩을 입고 나지막이 문을 열었다


내가 잠에서 아직 들깻나

눈을 의심했는지

나를 의심했는지

여전히 꿈을 꾸는지



어린 커플

살을 옥죄는 차가운 바람에도

눈이 놀랄 만큼 가벼운 복장으로 아침을 주문하고 있었다


이유 모를 패배감이 드는 이유는

내가 늙어감일까

저 친구들의 젊음이라는 패기 일까


나는 또 영감처럼 구석을 찾아 담배를 물었다


속도 없이 하늘은

참 맑다


나도 이제 인도사람이 다되었네

짜이 한잔에 오늘의 일과를 생각하다니



역시나 허세였다

계획이 없는 데 있는 척 한

(어린커플에게 느낀 패배의식이랄까...)


당장 오늘 떠날지도 내일 떠날지도 모르는

버스표나 알아봐야겠구나


지도에서 이곳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이살메르나 조드푸르



타타와 올가 역시도 

이제 곧 아람볼로 떠날 때가 다 되었는데

가볍게 챙겨 온 배낭으로 이렇게나 오래 같이 한 것도 대단하고 대견했다


아침도 먹을 겸 버스도 알아볼 겸

차가운 바람에 옷매무새를 단단히 한다



며칠째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올가를 볼 때면 좀 마음이 그랬는데

어제 무심코 거닐다 찾은 빵집에서 통할것 같은 기분이 스쳤다


거기로 가자했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던 어린 커플

더 과감한 커팅으로 늙은이들을 늙음의 늪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밥먹은지 얼마 되었다고 또 빵을 한가득 드시는지

의문에 2연패를 당한듯 했다


빵집이라

빵뿐이라 

이 빵 저 빵을 시켰다

하나 두울 총성이 울릴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하던 올가님의 광대

그의 푸른 눈이 더 깊은 바다가 되어 빠져 죽을 뻔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감동이다


그간 고생이 많았소 올가님

많이 많이 드시오

그대가 잘 드시니 

속도 없이 좋습니다



여행사 몇 곳을 더 들러

아메다바드 - 맙사(아람볼)행 버스가 더 있는지

우다이푸르 - 자이살메르(조드푸르)행 버스가 더 있는지를 알아봤다


약간의 시간차와 가격차이가 있었고

타타네 내일의 버스가 만석이라 오늘 급 떠나기로 결정했다


아주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는데

영어를 거의 못하던 올가

이 분위기를 눈치챈 듯 얼굴이 상기되더니

급기야 푸른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일인 줄 알았던 헤어짐이 

오늘이 되어 침묵이 되었던 것


마음의 준비라는 게

단단히 한다고 달라질 건 없지만

내일과 오늘의 무게

갑자기 라는 충격에 

올가의 깊고 푸른 바다에서 홍수가 일어난다


눈물을 흘린다


이 사람들아 왜 우시나

헤어짐이 그리도 가벼울 줄 알았는가

솔직히 울컥함에 표정관리와 감정을 숨기느라


메소드 연기를 좀 했다


어떤 인연인지 몰라도

이 거대한 인도에서 

국적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데

함께한 시간이 결코 길지도 결코 짧지도 않았네


익숙하게 만났지만

취약하게 헤어진다


나도 약간의 마음 변화가 생겼다

괜히 정 때려 그러는 것인지 몰라도

지금의 순간은 타타와 올가를 보지 못 했다


일정도 없었거니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는데

마음이 마음이 이상해

숙소로 들어와 누워버렸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2주간을 되돌아 보다

3시간이라는 단잠에 빠져버렸다


오늘의 헤어짐을

헤아리기라도 했을까


아침을 먹을 때

저기 멀리 보이는 산 능선에 보이던 

성에 가서 선셋을 보자고 했다

또 혹시 몰라 오후 4시에 만나자고



타타네 방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하릴없이 거닐다

아니 숙소 근처를 맴돌다

다시 돌아온 숙소엔

여전히 굳게 잠겨있는 타타의 방


근데

타타님 목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마음에 환청이 다 들린다 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하늘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아하

위쪽 루프탑에서 차 한잔 하고 있었구나

놀랬잖냐 갔는 줄 알고


언제나 가장 어두운 곳은 등잔 밑


릭샤를 잡아 선셋 포인트로 갔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다 입장료가 무지하게 비싸다

지난 역사를 봐도 타타님 스타일상 순순히 오케이 할 스타일이 아니다


큰 고민 없이 

다시 돌아온 숙소엔

최고의 선셋 포인트가 있었다

우리 숙소 루프탑

등잔 밑이 어두웠다

동네 전체가 발아래에 있다


왜 몰랐을까

한 번쯤 올라와 볼만도 했는데

여기서 종일 앉아 있어도 있을 만큼 최고의 장소

그리고

헤어지기 최고의 장소


아무도 말이 없이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게

너무나 조용하게 침묵으로 대화를 한다 


아무 말은 없었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눈듯


그간 너무 즐겁고 고맙고 행복했어 

타타님 올가


그렇게 붙잡고 싶었던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갔고 

이제는 잡은 손을 놓을 때


진하게 포옹을 하는데 

귓가에 나지막이 "take care"와 "샨티샨티"를 속 사귀었다


2주간의 역사다


고마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손만 흔들뿐 

멀어지는 릭샤 

뒤돌아보는 모습

한여름 밤의 꿈같았지만

늘 기분 좋게 기억하고 추억할게 

늘 건강하시오



여행은 능숙한 만남과 

취약한 이별의 연속이다 

끝이 아니라 연속


내일도 어김없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따뜻한 해가 뜰테지 

변하고 변할 건 없다 


나도 

여행도

끝이 아니라

연속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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