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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어부 Mar 13. 2017

인도를 노래하다

#47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맥그로드 간즈)


나는 몰랐고

너는 알았다

나를 알았고

너를 몰랐다

너는 빛이 나는 아름다움이고

나는 빛을 바라보는 작은 점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들

오롯이 바라 보인다는 강한 믿음으로

오랜 시간 견디어 온 너는 나의 발견으로

빛나는 점이 되었다

나는 알고 있었고

너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여서 아름답다는 것을







밝음의 부드러움

어둠의 날카로움이 공존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창틈과 이불 틈 사이로 스미어 들어

미세함과의 미묘함의 싸움이었다


침낭과 담요

그리고 다시 두터운 담요

칭낭속의 뜨거운 물을 담은 보틀


더웠다


비록 얼굴은 시렸지만

남루한 몸 덩이에 히말라야의 차가운 바람이 스미면

분명 소리 소문 없이 죽을 것 같다는 

확실에 찬 치밀한 계획이 된 계산이었다


자세가 나오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몹쓸 병에

어지간히 힘이 든 게 아닐 수 없었다

보통은 이런 것을 고문이라고들 한다



하늘하늘한 커튼 뒤로

작렬히 내려 쬐는 태양이 알람이 되고

오래간만에 새소리와 개소리에 완벽한 에코벨이 되어

깨끗하다 못해 깔끔하게 어둠은 밝음이 되고

잠과의 전쟁도 끝이 났다


낮의 부드러움도

밤의 날카로움도

적당히 날도 괜찮아서

다 좋은데


온수와 자물쇠

거지 짐도 석짐이라는 짐과

극복이 되지 않는 날카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눈 덮인 먼산을 바라보며

지극히도 1차원적인 생각에 머리가 아려온다

(사회에선 골칫거리도 아니다. 단 0,1도)



1차원적인 생각의 끝은

적당히 좋았던 숙소의 다른 방이다


옮긴 방의 자물쇠는 단단했으나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건 마찬가지였다..


뭔가가 아쉽지만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겠다 결론에 도달



어제 자물쇠 때문에

맥그로드 간즈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하릴없이 동네나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적당히 숙소나 알아봐야지


오늘의 할 일이 생겼다

참으로 별 것 아니지만 대단히 별 일이다


적당히 여미고 나와 무심결에 올려다본 계단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가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것이

사람을 시작부터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더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을

개척한다


모험에 항상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발견이다


첫 번째의 발견은

풍문으로만 들어오던 일식집


인도에선 한식집보다 더 귀하다는 일식집

발견만 2달이 걸렸다


망설이는 것조차 마음의 사치다


문을 여는 순간

이곳이 일본인지 인도인지 혼란스러웠다


메뉴판을 펼치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영어의 어울림


오늘의 메뉴라는 것이 있다


두부조림


일어로 주문을 받고 일어로 나온 음식

주문과 동시에 나온 음식은 인스턴트를 방불케 할 만큼 빨랐다

장인의 기술일까, 기대치에 대한 시간의 흐름을 못 느꼈던 걸까

 

첫술에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맛있다


미소된장 시금치나물 두부조림이 끝이지만

최고의 밥상이었다


그동안에 먹었던

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다란 쌀알들


짧고 통통한 것이 찰기가 촤르르륵


무언가를 먹었다는 포만감

트림은 일식 장인의 예의가 아니다

이 기분 좋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또 이곳저곳에서 일어가 들리고 모국어가 들리는 것으로 봐선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있었다(저스틱스 책을 들고 다녀서 눈에 더 익었다, 여행 중에 정의라..)

어설픈 젓가락질의 외국인들도 몇몇 있었고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맛있으니까


1차 욕구가 충족이 되니

한층 밝아진 시야는 레이더를 돌리다

책장 가득한 책들을 발견한다

인도 속에 티베트뿐만 아니라

여긴 티베트 속 작은 일본


멀리서 바라다본

책장엔 원피스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슬램덩크 괴짜 가족까지

가까이하기 전 까진

나는 오늘 잠정적으로 이곳에서 하루를 불태우겠다

다짐했다


볼 수는 있지만 읽을 순 없다


그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것이

입에 침이 말랐다

손 닿을 듯 가까이 왔을 때엔

내 것이 아니었다


허탈감

벽이 허물어지고

넘을 수 없는 강을 지났다


일본어다.. 일본어.. 


아쉽다 못해 허무함 가득

행복이 날아가는 것만 같은 순간이다


미련에 자꾸만 돌아서는 내 모습

어쩔 수 없었음에도 미련이 생기는 미련한 내 모습


완전 아쉬움을 뒤로하고

저기 멀리 볕이 오래도록 잘 받고 있는 숙소들은

가격은 얼마인지

뜨거운 물은 잘 나오는지 알아본다



마음에 드는 곳은 공사 중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은 가격은 착하나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 쓸데없는 고민을 하다. 걷다. 하다. 걷다


대부분 티벳탄들이 머무는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인도 속 티베트

그러고 보니 여긴 인도인데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한 순간부터 인도라는 기분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인도 속에 다른 나라가 존재했나 할 정도로

모진 고통 속에서 잘 견디고

자유와 행복 영원을 꿈꾸는

버틴 5.60년의 세월

우리나라와도 많이 닮아 있다


그래서인지 생김새도 많이 닮아 있다 

허나

그 속에서도 유독 나에게만은 곤니찌와를 연발하는 티벳탄.. 

아리가또



걷고. 먹고. 걷고. 사진 찍고. 걷고. 마시고. 걷고.




정말 한 게 없다

거니는 것 말곤 온종일  걷고 마시고 먹고

1차원적인 것뿐, 그리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 일

그게 전부인 하루


어느덧 해 질 녘의 맥그로드 간즈는

노을이 이 곳을 너무나 아름답게 마지막까지

비추어 주고 있었다


이곳의 지대가 높아서 그럴까

넘어가는 해가 발아래 있다

기분이 참 묘하다


노을 덕분에 북인도에서 손꼽힐 맛난 짜이집을 발견했다

(내 기준이지만) 유레카 임에 분명했다


오늘은 발견의 날


끝이 아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덧 익숙한 것이 익숙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익숙해질 때쯤

삐뚤삐뚤하게 한글로 적어 놓은 피스 카페

걸음이 멈추었고

찰나였지만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테벳탄과 결혼한 한국 아주머니가 운영한다는 티베트 음식점


너무나 당연스레 한글에 이끌려 들어온 식당

우리나라 수제비와 너무나 비슷한 뗌뚝과 처음으로 진짜 리얼 배추김치를 주문해서 먹었다


비록 티베트 음식이지만

한국의 손맛이 팍팍 베여있었고

양배추로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리얼 아삭함을 자랑하는 진짜 배추김치


세상에나 만상에나


맥간

너 뭐냐 

여긴 뭔가를 찾아내는 맛이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충족함과 안락함이 가득한 도시



어떡하지 너?

점점 좋아지는데


오늘의 유일한 할 일을 마치지 못했고

자연스레 돌아가는 숙소



혹시나 해서 틀어본 온수

콸콸 터진다

나참, 환장하게 하것네

절로 나는 헛웃음에

이제 진정 나를 받아주는 거냐. 맥그로드 간즈여


당연했던 것들은 없다

그러니 사소한 것에 감동이다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매 순간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에 포기 하지는 말자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길이 사라지니까


한층 깊어진 하늘 속에

어제 보다도 더 많이 하얀 구멍이 나있다

반짝반짝

깊은 산속에서도 별빛처럼 하얀빛이 세어 나온다



별 헤는 밤
별이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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