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차녀, 가족을 말하다]
차녀로 태어난 나는 가족 중에 장녀인 언니로부터 좋고 나쁜 모든 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K차녀에게 K장녀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시에 헤어질 수 없는 가해자다. 언니는 가정 내의 중재자 역할, 책임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지원군이면서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다 푼 가해자다.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인 이유는 20대 후반인 아직까지도 정도의 차이일 뿐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는 과도한 책임감을 갖고 가정내의 K장녀로서의 역할을 해냈었다. 언니가 가족 내 중재팀에 팀장이면 나는 대리정도로 팀장이 병가로 결근하면 그때서야 나서서 중재라는 업무를 했다. 나는 언니가 그냥 나처럼 무시하고 할 일에 집중하면 되지 부모님 싸움에 왜 그렇게 신경쓰고 말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언니가 항상 해결하기에 느낄 수 있던 당연함과 편리함에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독립적으로 나의 인생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언니가 방어막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공부하라는 엄마의 통제로 인하여 좋아하던 미술을 포기한 언니에 비해 나는 자유롭게 운동을 할 수 있었고, 밤마다 싸우는 부모님을 말리기 위하여 잠을 설친 언니 덕분에 나는 푹 잘 수 있었다.
이런 방어막 역할이 언니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에는 나에게 화풀이로 돌아왔다. 본인만 가정일에 신경쓰고 중재하고 스트레스받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었나보다. 내가 신경쓰지 않고 무심한 것이 언니는 화가 났던 것 같다. 내가 본인처럼 적극적이지 않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통화 중에 ‘네가 다 해결해라’라고 떠넘기면서 굉장히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식이다. 어렸을 때는 맞대응하거나 무시하고 요리조리 피하면서 살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언니의 화풀이를 회피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 남동생은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언니한테 전화를 건다. 붙잡고 1시간 동안 본인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든, 언니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여 짜증이란 짜증은 다 쏟아낸다. 그리고 쓰레기들은 그대로 언니에게서 나에게로 버려진다. 이해는 한다. 가족들의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어디에 풀 지 않으면 속으로 삭힐 수 밖에 없는 언니를 잘 알기에, 모부의 전화는 피해도 핸드폰 ‘언니’가 뜬 화면의 통화버튼은 한참을 망설이지만 결국에는 누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나의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다. 가족내의 화풀이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려고 언니 전화도, 가족 전화도 다 피해보는 노력도 해봤다. 언니 전화는 한 번 받지 않으면 그 때부터 기본 6통은 부재중으로 찍힌다. 부재중 아이콘과 숫자 6에서 언니의 분노가 느껴짐과 동시에 언니가 또 모부나 동생때문에 고통 받을텐데, 나만 회피하는 것 같아 죄책감이 찾아온다. 그러다가도 왜 다들 언니한테 화풀이해서 나한테까지 피해주는 건지 모부와 동생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가족들이 가좆인 건지 모르겠는 마음에 울컥한다. 가끔은 가족들이라는 범죄자에게 언니가 인질로 잡혀있는 것 같다. 인질이 범죄자에게서 벗어나야 내가 좀 살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언니는 부모님 사이에서 K장녀 타이틀을 벗어던지지도 탈출하지도 못한 채 묶여있다. 육체적인 독립은 성공했으나 정신적인 분리는 불가능했나보다. 하긴 나도 가정으로부터 독립한 지 8년이 되어가나 아직도 가정에게서 언니에게서 온전한 독립은 하지 못했다. 우리는 부모님의 자식인데 우리보다 한참 어른인 그들의 뒤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부모님으로부터, 나는 언니로부터 온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온전히 독립한다면, 언젠가 함께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