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민정이 썼습니다.
토론토에 대한 글을 읽고 나니 저도 생각나는 곳이 있어요.
23살이던 겨울, 3개월 남짓 해외 인턴쉽으로 시드니에 다녀왔죠. 인턴 경험보다는 국비 지원으로 호주에 갈 수 있다니, 주저 없이 지원했어요. 한창 배낭여행에 푹 빠져 있을 때라 공짜 여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거든요. 인턴 급여는 없었지만 소정의 체류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체류비는 정말 소정의 금액이어서 항상 돈이 부족했어요. 점심 시간이면 근처 마트에 있는 푸드코트로 가서 가장 저렴한 메뉴를 사 먹곤 했는데, 그건 김밥 반 줄 사이즈의 주먹밥이었어요. 양이 부족해서 항상 배가 고팠죠.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돈을 좀 더 부쳐달라고 했으면 됐는데 그 땐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 오기 같은게 생겨서 꾹 참고 버텼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푸드코트가 아닌 지하 1층 복도에서 볶음밥을 파는 간이식당을 발견했는데 양도 많고 가격도 저렴해서 그 가게만 쭉 이용했어요. 그런데 Fried Rice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듣고 꼭 두 번 세 번 다시 묻는 거에요. 그래서 매일 밤 자기 전에 Fried Rice를 연습했어요. 한국인들이 어려워 하는 F와 R 발음을 그 때 연습해서 Fried Rice 만큼은 원어민처럼 할 수 있게 되었죠.
이렇게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MP3에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을 다운 받아 갔는데 그 Fried Rice를 먹으면서 라디오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충만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나중에는 다운 받아 간 것을 다 들어서 다시 듣고, 또 다시 듣고 했는데도 매번 같은 농담에 낄낄 웃으며 좋아했죠. 한번씩 직장 동료가 커피라도 사주는 날에는 그게 또 얼마나 맛있고 고마운지, 장난감 받은 조카 마냥 기분이 좋았더랬어요.
저도 소진님처럼 언젠가 꼭 시드니에 다시 가야지 12년 동안 다짐만 하고 있어요. 언제든 가면 되지 생각했는데 코로나라는 악재가 터지고 나니 이제는 마음만 먹는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네요. 시드니에 다시 가게 된다면 늘 가던 그 마트에서 주먹밥을 종류 별로 다 사고 싶고, 추억의 Fried Rice도 아직 팔고 있다면 또 사 먹고 싶고, 오페라 하우스 근처 말도 안되게 비싸던 식당에서 맥주도 마시고 싶고, 페이스북에서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 옛 직장 동료들도 만나고 싶어요.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소소한 일에도 행복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 왜 마음은 슬퍼지는 걸까요? 그 때의 내가 그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해요. 그 곳에 가면 라디오 하나로, 4불 짜리 볶음밥 하나로 행복해하던 나를 만날 수 있을까요? 추억이 창문에 맺힌 빗방울처럼 방울방울한 일요일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