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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a C May 28. 2017

착함과 노련의 경계

나는 정말 인생의 때가 탄 것일까


나는 착한 사람일까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더 중요시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천성적인 착함이 탑재되어 있다면 일하기 훨씬 수월하다.

내가 지난 4년동안 기복없이 한결같은 서비스를 했다면 거짓말이겠다. 나도 사람인지라 상황에 따라 기분이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승무를 하면서 이 감정기복에 휩쓸린다면 힘든건 고객이 아니라 바로 나다.




서른 살이 넘으니 이제 왠만한 상황에선 큰 기복이 없으나 예전 어릴 때를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경우도 있었다. 패밀리 레스토랑 알바 초기엔 고맙다고 칭찬해주는 말에도 얼굴이 빨개져 눈물까지 났으니.

지금은 받아들일 줄도 알고 표현할 줄도 아는, 나름 서비스직에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빠는 항상 손해보고 살라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나에게 세뇌시켰고 결국 나는 그것이 세상의 진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뭔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난 뒤에 맨 끝에 남는 것을 가져와도, 그것이 설령 형편없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내가 정말 착한 사람으로 남아야 하는건지, 조금은 여우같이 눈치를 보고 챙길 건 챙겨야 되는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은 전쟁이라고 한다. 야생이라고 하기도 하고.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그런 끔찍하고도 슬픈 곳이다.

회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지각, 결승없이 만근하고 가끔 충당도 타며 회사에서 하라고 하는 교육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정도인 것 같은데, 아무생각없이 회사만 다니기엔 너무 무료하기도 하고 내 '착함'이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음이 느껴지고 있다.

관광열차 탈 땐 착해 빠져가지구 선물도 막 퍼줬었는데.




만약 고객들이 나에게 호언장담하며 꼭 써주겠다던 친절민원을 다 올려주었다면 친절민원 열 댓개는 받았을거고 내가 하고 싶었던 대내외 활동을 다 할 수 있었다면 나는 매우 만족한 상태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하나도 이룬 것이 없고 이제서야 조바심이 난다. 헌데 이것이 사회생활에 대한 욕심인건지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생긴 노련함인건지 알 길이 없다.




내 '착함'의 부재라면 매우 속이 상하겠다.

이것이 내가 승무원이라는 일을 하게끔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는데.

어느새 다 소진해버려 없어진다면 그보다 속상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나는 늘 책을 읽고 글을 읽고 좋은 강연을 들으며 '착함'을 채웠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다면 난 직무유기에 해당할테지.

착하디 착한 우리 콩이. 너한테 배워야겠다.




그래도 일말의 착함은 남아 있다는 거.

열차도 아니고 지하철로 목적지까지 어떻게 가는 것이 나은가 노선도를 돌려가며 알아봐 주기도 하고, 아기가 울어 화장실을 못가고 있는 엄마가 있으면 아기를 안고 봐주기도 한다. 온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착하니까'라는 핑계를 붙이기도 민망하다.








어쨌든 요샌 사회생활에 물든, 승무에 찌든 내가 너무 싫어져 회의감이 들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내 천성의 착함을 무기로 열차에 오른다. 분명 열차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일하기 싫으니까 일하지 말아야지 생각해놓고 어느새 정신차려보면 해야 할 일도 미룬 채 땀 뻘뻘 흘려가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 2호차 리프트 하차 도우미도 있는 주제에 8호차 할머니 짐을 들어드리고 있다니.

뛰어야지 뭐. 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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