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주메를 쓰고 인터뷰를 준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도 3명의 직장 상사를 거쳐왔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알겠다. 어떤 상사가 좋은 상사인지.
그리고 좋은 직장은 들어가기 전에만 중요하고 들어가고 나서는 좋은 상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에게는 '성장'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이 성장은 회사의 성숙도보다는 상사의 성숙도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상사다. 그래서 더욱이 요즘 좋은 상사란 어떤 상사인지 많이 고민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좋은 상사되는 법을 검색해 몇 가지 대표적 영상을 찾아볼 정도였으니.
그러나 영상을 통해서 아직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던 참에, 내가 거쳤던 상사들을 떠올리며 그들로부터 좋았던 점을 나열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 간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장점들이 있다면 그 특성은 좋은 상사가 되는데 꽤나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 부분을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현재 상사부터 거슬러 올라갈까 싶다.
인터뷰에서부터 정말 organized 되었고 솔직히 말해서 냉철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던 영국인 상사다.
나에게 요구되는 GM으로써의 덕목을 스스로 수치로 매겨보라고 할 때는 선입견이겠지만 역시 '남자'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절대 감 혹은 느낌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정확한 수치로 내 능력을 증명해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나에게 스케일을 1-100주 더니 각 항목에 대답을 해보라고 했고 내 기억에 나는 모든 항목에 스스로 80-90을 줬던 것 같다. (인터뷰 Tip1 지금 생각해보면 꽤 잘한 듯, 어차피 말한 게 있으니 나는 그 수치를 증명해 보이려 노력할 거고, 상사는 그 덕분에 (?) 나를 믿고 뽑을 수 있었을 테니)
아무튼 나의 첫인상은 그랬고, 일을 하면서도 멋있는 상사다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건,
한 번은 내가 어떤 결과 때문에 슬퍼했던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weekly 콜을 하고 있던 와중에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니 솔직히 좌절스럽고 허무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던 와중이었던 것 같은데 떨리는 내 목소리에 한치의 요동도 없이 차분히 그는 말했다.
클레어, 내 생각에 너는 지금 이 일과 니 감정이 많이 attached(정확히 이 단어를 언급해서 아직도 인상에 남음)가 되어 있는 것 같아. 그 말은 네가 정말 이 일에 열정이 있고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나쁜 게 절대 아니야. 오히려 좋은 거지. 다만, 난 네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이 일에 너무 많은 감정을 쏟지 않아야 할 거야.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다만, 네가 이런 일이 있다고 해서 내 연락을 피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터놓고 나에게 얘기해줘.
아 정말 그의 첫 문장을 듣는데, 눈물이 쑥 들어갔다. 진짜 차분한 목소리로 저렇게 팩폭을 날리니, 이건 뭐 진짜 그의 통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말했다.
에드, 고마워. 나도 알아 내가 이 일에 감정이 attahed가 된다는 게 결코 좋은 건 아니라는 거. 그리고 나는 이런 내 특성을 전부터 알고 있었고 지금도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야. 네 말처럼 난 잘하고 싶어서 그래,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이 있어서 그래. 근데 네가 그걸 알아봐 주다니 고마워. 그리고 내가 연락을 일부러 안 받았던 건 아닌데 그렇게 보였을 수 있었을 것 같아 미안해.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할게.
그러고 백 투 더 본론으로 와서 무사히 위클리 콜을 끝내고 한참을 생각했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내가 이렇게 곧바로 정신을 차렸던 적이 있을까? 엄마에게 혼나도 한참이 지나야 깨닫는데... 그 이후로 나는 일에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 중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은 다른 게 아니라 Take a deep breath and keep going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상사다.
정리하면 좋은 상사는, 감정에 의해 좌지 우지 되지 않고 부하직원의 감정은 이해하되 비즈니스의 목적을 잊지 않고 이끌어주는 상사. 플러스로, 어떤 상황에서든 부하직원의 장점을 상기시켜주면서 encouraging 해주는 사람.
또 다른 나의 상사는 3명 중 유일한 한국인 상사 분이셨다. 그분이 좋았던 점은 나의 자율권을 많이 인정해주셨고, 내가 하는 거라고는 전적으로 믿어주셨던 것이다. 굳이 단점을 꼽으라고 하면 그냥 돈을 가장 많이 생각하시는 분이셨다는 것? 그렇다고 나에게 매출 압박을 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믿어주시는 게 정말 감사한 분이었고 그때의 나는 매우 행복했기에 직원을 그냥 '믿어주는 것' 그것 또한 좋은 리더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어렵다.
상사 이기전에 나는 사람인데, 사람인 이상 고유한 '나'로써 존재하는 게 먼저인데.
누군가와 함께 길을 가는 이상, 때로는 '나'를 먼저 생각하기보다 리더로서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함을 알기에.
여전히 어렵다.
어쩌면 좋은 상사가 되기를 포기하는 길이 가장 좋은 상사가 되는 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여러분들이 느끼는 좋은 상사는 어떤 상사인가요? (진짜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