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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경재 Aug 14. 2024

여름이 하는 일

앙(仰) 이목구심서Ⅱ-50

여름이 하는 일



말복 정오다.

오래도록 빛의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햇살이 마당에 흥건히 고여 끓고 있다.

세상은 거대한 찜질방이다.

열기에 맨 얼굴이 따끔거린다.


대추나무도, 감나무도 어깨를 내리고 땀을 흘리는 데

한낮의 매미 소리는 비명처럼 날카롭다.

때때로 계곡에서 흘러내린 바람은 파도처럼 허공을 흔들며 가슴에 파문으로 남는다.


엎드려 마당 귀퉁이를 지워가던 호박 줄기는 팽팽하던 이파리를, 펴다만 우산처럼 비스듬하게 늘어뜨리고 몰려드는 졸음을 쫓아내고 있다.

하늘엔 그 많던 구름도 어딘가로 피서를 떠나고

백설탕 같은 구름 몇이 푸른 바다 위 범선처럼 느릿느릿 흐르고 있다.

고개를 로하여 맑은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발이 여러 개인 거북 모양의 구름 하나가 바다를 헤엄치고 있다.

이내 출렁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려오고 바위섬에 부딪힌 파도는 잘게 부서진다.

거북이는 하얀 포말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대양을 가로질러 간다.

바닷물이 얼굴을 적시고 속옷까지 다 젖어든다.

짭조름한 바닷물이 입안에 들어오니 침샘이 열린다.

거북이는 기다란 혀로 얼굴을 닦아내며 앞에 드리워진 망망대해를 헤치며 나아간다.

이렇게 하늘을 유영하는 거북구름의 뒤를 따라가며 시선을 좌우로 던진다.

데워졌던 몸이 가슴 한가운데서부터 순간 서늘해진다.

여름이 최고조에 달한 오늘이다.

이웃집 마당의 빨간 고추와 베이고 눕혀져 잘 말라가고 있는 깨를 본다.

대추와 감의 과육을 키우는 일,

마당의 분꽃을 피우는 일,

마을 앞 3번 국도를 따라 배롱나무의 붉은 입술을 누구보다 뜨겁게 훔치는 일,

더울수록 바다를 닮아가는 하늘을 높이 들어 올리는 일,

마술피리를 불어 바다로, 계곡으로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일,

제 할 일을 다하고서 지친 몸으로 가을의 손목을 잡고 마당 앞까지 데려오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밖에 나와 신이 난 빨래들을 춤추게 는 일,


여름이 하는 일을 일일이 열거하기엔 이 여름은 짧기만 하다.

뜨거웠던 계절도 이제 꼬리를 보이고 있다.

사라져 가고 잊혀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더워도 좋았다.

짜증나도 좋았다.

여름이어서 좋았다.

모든 그늘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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