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매듭짓는 이야기
엄마와 나는 순례를 마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사흘을 머무른 뒤 나흘째부터 이베리아 반도를 한 바퀴 도는 여행을 했다. 산티아고에서 머무르는 동안 이 땅의 끝, 피니스테레 혹은 피스테라에 가서 0,00km 비석도 만났다.
산 피나리오 앞의 풍경.
피스테라에서 만난 0,00km 비석. 비로소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대구 요리를 먹으러 가던 길, 우리는 멋진 호스피탈레라였던 김남희 작가님을 만났다. 우연이 빚어낸 작은 기쁨이 아직 살아있던 때, 파티마에서 엄마와 나는 순례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브라질 순례자들을 만났다. 산티아고 대성당 미사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우리는 이런 식의 재회를 상상도 하지 못했더란다. 서로 얼싸안고 비즈를 한 뒤 기념사진도 찍었다. 엄마와 한 순례자는 서로 묵주를 교환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묵주와 브라질에서 가져온 묵주를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서로 건네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압도적인 세비야 성당, 넘치는 에너지의 플라멩코, 살 떨리던 론다 누에보 다리, 메스키타의 아름다움, 감동적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가슴이 울리던 몬세라트 검은 성모님과의 만남. 아롱다롱한 추억들을 잔뜩 끌어안고 엄마와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의 이야기들. 쟝은 정말로 내가 적은 소원들을 끝까지 산티아고로 가져가 나에게 전달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일을 찾았고 그 덕에 이곳저곳 누비는 중이다. 티보와 키트리는 지금 마다가스카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나와 만날 날을 엄청 기다리고 있다며 그들답게 시끌벅적하며 사랑 넘치는 메일을 보냈다. 말리스는 나름의 미래를 찾는 동시에 종종 모험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바로 엊그제 요르단에서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주비리에서 열심히 나와 싸웠던 유디. 나중에 sns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내가 생장드피에포흐에서 만났던 젊은 친구들 H, Y, L과 애틋한 추억을 많이 쌓은 모양이었다. 이를 통해 하나의 대상이 누군가에는 최상, 누군가에는 최하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만났던 C언니. 따스한 마음으로 나를 무장해제시켰던 C언니는 약간 고생하긴 했지만 예쁜 추억을 갖고 한국으로 돌아와 하고 싶었던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H언니는 나름의 길을 차곡차곡 걸어가고 있다 한다. 우리 엄마, 장 젬마 여사님은 다음 여행에는 스스로 대화할 수 있도록 영어공부를 불태우고 계시다. 눈에 띄는 발전 속도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이 글을 적으면서 나의 길을 마무리짓는다. 걸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그 어느 시간보다 길었고 압축적이었다. 이 마침표를 찍은 다음 나는 다른 시작선에 서 있다. 두근거리는 기대감과 약간의 불안감은 새로운 시작에 당연히 함께하는 감정 이리라. 이 길이 내게 아로새겨준 것 하나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때 해 볼걸 하고 훗날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인 지금, 나는 후회를 덜 남기기 위해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