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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Together Nov 08. 2020

미운 네살이 오셨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 사랑스런 나의 아들은 가고 미운 네살이 오셨습니다. 

주변에서 하도 미운네살~ 미친네살~ 이라고 하기에 네살이 되면 뭐가 그리 힘들어서 저런말을 할까 싶었는데 이제 알겠다.

'밉다 미쳤다' 라는 형용사로는 부족한 그냥 아주 막 나가는 네살이다.

막가파 네살은 뭐든지 스스로 해내야한다.

잘 해내면 다행이지만 실패했을 경우 쌩떼와 울부짖음, 분노의 악다구는 옆에서 말릴까말까 조바심냈던 엄마를 향한 분풀이로 날아온다. 안되겠다 싶어 훈육이라도 할라치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람이 되어 자기변론을 시작하는데 듣고 있으면 천하의 몹쓸 계모로 만들어버린다.

예를들면 오늘 둘째 목욕을 시키는데 폭군네살이 도와주겠다고 좁은 욕실을 비집고 들어와 받아놓은 물에서 물장난을 하는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지딴엔 도와준다고 입봉사를 했으니 체면 상하지 않게 참아가며 둘째 목욕을 함께 시켰다.

폭군의 물장난을 참으며 급박하게 목욕을 끝내고 로션타임을 바르려는 찰나, 전쟁이 시작됐다.

동생 로션을 발라주겠다며 거품 뭍은 손을 무작정 둘째에게 들이대는 그 순간 난 이성의 끈을 놓았다.

'이 쉐키야!'

폭군 네살 아들과 살벌한 싸움이 시작됐다.

폭군으로 변한 아들은 던지고 소리를 질러대며 나의 신경세포를 건드렸지만 끝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조막만한 손바닥으로 혼신의 힘을 담아 묵묵히 버티는 나의 등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네 이놈!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어!'

나는 엉엉 우는 첫째를 작은방으로 끌고 들어가 저항하지 못하게 손목을 꽉 잡고 엉덩이를 때리며 혼냈다.

"화나도 소리지르는 건 안돼. 때리는 건 나쁜거야. 화가나면 속상하다고 말하고 네가 하고 싶은걸 다시 한 번 엄마에게 말해!"

꺼이꺼이 울던 아이가 말했다.

"내가 (꺼이)도와주고 싶었어(꺼이)"

꺼이꺼이 마지막 울음까지 쏟아낸 아이가 귀에대고 자기도 목욕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처럼 작은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고 로션을 바르고 싶단다.

한바탕 혼난 첫째는 동생 욕조에서 목욕하고 저녁밥을  야무지게 싹싹 비우고 양치질도 쓱싹 해낸 후 일찍 잠에 들었다.

미운 네살이지만 쨘한 네살이다.

형님 행세를 하고 싶지만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운 네살.

마음보다 몸이 앞서 실수가 많은 네살.

보고듣는 모든 것이 다 자신의 상상 속에서 이뤄지는 네살.

상상과 현실이 혼란스러운 네살.

미운 네살 지호의 씩씩한 분노가 시작된 것 같다.

조금 더 친절한 엄마

조금 더 참는 엄마

조금 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하는 시간이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훈육도 중요하지만 미운네살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인내와 공감뿐이라고 한다.

인내와 공감이 안되는 일들뿐이지만 되도록이면 나도 화낼일도 참아보고 소리 지를 일도 웃고 넘겨보려한다.

그래도 안되면 하다하다 애미를 치는 오늘 같은 패륜을 저지르면 그땐 오늘처럼 엉덩이를 내어줘야 할것이다!





육퇴후 단상

폭군 네살 지호.

오늘 하루 너와 나 열두번도 넘게 소리지르고 

"하지말아라"

" 내가 할게"

"위험해, 더러워"

"괜찮아, 씻을게"

란 말만 반복했던 것 같은데

휴대폰 사진을 보니 웃고 춤추는 네모습, 장난 치는 네모습, 동생을 돌보며 의젓한 말을 하는 네모습이 가득 있구나.

엄마는 니가 매일 미운짓만 한다며 한숨만 내쉬었는데

사실 미운짓이 아니라 니가 커가는 모습 중에 하나였구나.

울어도 떼써도 내곁에 쏙 들어와 웃고 잠드는 널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미운 네살이지만 치명적인 사랑을 주는 네살.

지호의 네살을 더 많이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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