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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윻윻 Feb 14. 2022

02. 여적여? 여자의 편은 언제나 여자야!

보다 보니 보이는:대장금으로 보는 내 주변 여자 이야기

드라마를 보다보면 주인공 옆에 ‘친구’ 캐릭터가 꼭 나온다. 보통 세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능력이 아주 출중한 유형이다. 이런 유형의 친구 캐릭터는 헤어진 애인, 가족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은 기본, 주인공의 적성은 물론 미래 먹거리까지 해결해주는 수호천사다. 


두 번째는 세상의 모든 재수없음이 몰빵돼 있는 유형이다. 이런 친구들은 혼자서 사고를 쳐도 정신차려보면 주인공까지 휘말리게 해 다 된 일에 코 빠트리는 재주가 있는데, 거기에 꼭 “아니 나는 네 생각해서”라는 말을 덧붙여 뒷목을 잡게 하는 고구마 유발자들이다. 


세 번째는 맞장구 형이다. 주인공이 무슨 말을 해도 “정말?”,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괜찮을까?” 이 세 마디로 모든 대화가 가능한 기적의 화법을 소유한 유형인데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커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늘 얘기할 연생이가 바로 이 세 번째 유형이다.     



아마 이 둘도 서로가 서로에게 평생의 친구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것 같다

연생이는 장금이가 수라간 생각시로 입궁해 처음 사귄 친구로, 마음도 여리고 눈물도 많지만 그만큼 정도 많은 착한 친구다. 그런데 연생이는 세 번째 유형 중에서도 조금 달랐다. 5화에서 어린 장금이를 오해한 생각시 들이 장금이를 따돌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연생이를 ‘다시’ 봤다. 어딘가 주눅 들어있고, 유약하다고 생각했던 연생이는 장금이가 다른 생각시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장금이 그런 애 아니에요! 장금이 나쁜 애 아니에요. 장금이 좋은 애에요!


아픈 엄마 대신이라며 거북이를 궁에 데리고 오는 조금 이상한, 요리 실력도 사회생활 능력도 평균 이하인 밍숭맹숭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첫 인상과 달리 ‘연생이… 너, 좀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대사는 더 멋있다. 대놓고 자신을 두둔하는 연생이가 걱정된 장금이가 “너 그러다 언니들이 너 한테까지 말 안 걸면 어떡하려고 그래”라는 말을 하자 연생이는 생긋 웃으며 말한다.


그러면 너 하고만 말하면 돼지 뭐


이 단단하고 올곧은 면모라니. 앞니가 빠져 휑한데 그런것 따위 개의치않고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역 친구들이 나오는 회차를 몇 번이고 돌려봤다. 장금이에 대한 연생이의 태도는 드라마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한결같다. 자신의 가장 친한 동무 장금이 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무조건적인 칭찬과 지지를 보낸다. 


이걸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회차가 바로 8회 ‘어선경연’이다. 어선경연은 생각시들이 그동안 수라간에서 배운 것들을 총동원해 과제를 만드는 일종의 나인 서바이벌인데 여기서 장원이 되면 상찬 나인, 그룹의 센터같은 자격이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의 연생이는 여기서도 자신이 아닌 장금이가 장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엄청난 우정을 보여주는데 그 이유가 더 놀랍다. 


'이런게 우정이면 난 친구 없는것 같은데ㅜ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별하다
그냥, 네가 잘되면 꼭 나 같이 무시 받는 애들이 잘되는 것 같아서



이 대사를 다시 들었을 때 꽤 충격적이었다.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이 내가 잘되는 것만큼이나 기쁠 수 있는 일일까? 나도 누군가의 성공을 내 일처럼 기뻐할 수 있는 가족 아닌 타인이 있나?를 곱씹어봤다. 그리고 자연스레 K가 떠올랐다. K는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이제는 몰랐던 시절보다 알았던 시절이 더 길어진 친구다. 늘 어딘가 모르게 들떠 있는 나와는 달리 한결 차분한 성정을 지닌 K는 착하고 재주도 많고, 매력이 넘치는 친구다.

나에게 K에 대해 설명하라고 하면 1박 2일 필리버스터도 가능할 정도로 좋아하는 친구라면 설명이 될까. 그런 K를 누군가가 오해하고 상처를 준다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러다 문득 장금이에 대한 연생이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아, 이거구나’ 


예전만큼 자주 보이지 않는데 ‘여적여’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뜻으로 여자들끼리 정당한 경쟁보다는 질투에서 비롯한 뒷담화 같은 중상모략 같은 상황을 통해 서로를 곤경에 빠트리는 상황을 표현할 때 주로 쓴다. 


이 말이 나쁜 이유는 너무 많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저런 말들이 여성들에게 언제나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것은 주로 여성이라는 점을 자주 잊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다른 여성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하는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내가 K에게 그렇듯, 순수하게 다른 이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는 많은 여성들을 보았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묻고 싶다. 장금이 같은 친구가, 연생이 같은 친구가 있는지, 외롭지 않은 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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