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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aya Jun 27. 2019

리처드 도킨스 - 두 번째 이야기

그의 신념과 미래

국내 출판된 도킨스의 저서들 ©Nyaya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것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유명하지만, 진화적 접근법으로 무신론을 전파하는 사람으로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은 분이기도 하다. 또 다른 그의 저서인 <만들어진 신>은 그의 무신론적 신념을 잘 드러낸다.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간에, 즉각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러한 책을 썼는지는 그가 말한 다음의 문장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I am against religion because it teaches us to be satisfied with not understanding the world.


사실로서의 역사만을 놓고 보았을 때, 기독교는 우리를 사실로 이끌기보다는 인류의 상상력으로 가득 찬 잘못된 ‘세계관’으로 인류를 인도해왔다. 일례로 ‘주님에게는 하루가 천년 같다’는 성서의 내용(베드로후서)과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근거로, 세계는 6000년이 지나면 종말을 고할 것이라는 중세 신학자들의 진지한 논의는 구약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의 글(소위 EJP문헌으로 알려졌다)에 전적으로 기반했다.


지구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도 구약성경에 나온 이들의 나이들을 합산한 결과였다. 물론 이런 주장은 근대에 와서 지질학적 연구와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법에 의해 폐기되었다. 또한 코페르니쿠스-티코 브라헤-케플러-갈릴레이로 계보가 이어진 근대 과학혁명은 기독교적 지구 중심설로 인해 매우 힘겹게 출범했다. 당대의 저명한 마르틴 루터는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어떤 사람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그 점성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천체나 천계, 해와 달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생각한다오. (중략) 이 바보는 천문학 전체를 뒤집고 싶은모양이오. 하지만 성서에 여호수아가 멈추라고 명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오.


결국 종교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반증이 가능한 객관적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믿음’의 강요를 통해 순환론적 논법을 펼친다는 것에 그 문제가 있다. 중세 시대 그레고리우스 7세의 <교황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잘 드러낸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로마 교회는 지금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강압적 주장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에, 도킨스는 이러한 논법을 지극히 혐오한다.


사실, 종교에 대한 그의 공격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암막을 드리우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도킨스 자서전 2권(나의 과학 인생)의 9장에서 그의 견해와 투쟁이 잘 서술되어있다. 그의 투쟁은 마치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청년들을 지적 대화로 끌어들여 당시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에 의문을 품도록 가르쳤다. 그는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내가 여러분에게 진실을 말한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마십시오.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는 많은 불법 행위와 부정행위에 정직하게 대결함으로써 여러분이나 다른 대중과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은 생명을 보존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생명을 보존하면서 정의를 위해 싸우려는 사람은 공인이 아니라 사인으로서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Jacques Louis David - The Death of Socrates(1787)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주 먼 옛날이야기일까? 1925년 미국 테네시주의 과학교사인 '존 스콥스'는 수업시간에 '진화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수업시간에 진화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테네시 주의 법률 때문이었다. 84년이 지난 오늘날은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Scopes Trial, 이후 미국은 생물학 연구소가 제작한 교과서를 사용하게 되며, '진화'를 핵심 이론으로 강조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Paul Gauguin -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1897)

종교인, 철학자, 예술가들은 저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의 테제를 제시하며, 대중들이 그에 공감하고 동참하길 바란다. 종교인들은 조로아스터적 종말론을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자고 말한다. 예술가와 철학자는 '이즘'을 남긴다.


도킨스의 인간철학과 미래는 무엇일까. <이기적 유전자>의 독서를 중도 포기한다면,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를 옮기는 물리적 수단으로써 존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미래란 '유전자의 보존'에 전력을 다하는 정적인 세계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유전자의 진화는 일어나고 있으나, 지리적 격리가 거의 사라진 현대 지구라면 인류의 진화는 더 느리게 진행될지도 모른다고 도킨스는 지적한다. 우리는 개체 수준의 스케일을 벗어나는 생물학적 수준의 진화를 목격할 수 없고, 자손을 양육하고 후손이 내 유전자를 이어나간다는 사실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삶의 의미라는 단어 자체가 적합한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개체 수준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 보인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이를 지적한다. 농경과 산업사회가 우리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 당장 알지 못하기에 '덫'에 걸려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는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새로운 관념, 밈(MEME)을 제시한다. 유전자(GENE)의 전승과 비교되는 문화(MEME)의 전승. 인류가 원시 사회에서 지금에 이른 원동력은 바로 지혜의 전승에서 온 것이 아니었던가. 인류는 음성 언어와 활자를 개발하고, 도서를 보존하며 인류의 지식을 적층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지금도 그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구글 데이터센터 - 지층을 다양한 색깔로 쌓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문화의 변화는 유전자와 다르게 하나의 세대에서 관측 가능한 양상으로 인류사에 각인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 도킨스는 적어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안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이것을 받아들일지, 혹은 다른 것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몫으로 남아있다.


#리처드도킨스 #이기적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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