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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덜 Jan 10. 2019

게임 회사의 업무 문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기업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역할 조직 (Role-driven organization) 과 위계 조직 (Rank-driven organization) 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역할 조직은 해당 업무의 직접 담당자가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과업을 수행하는 수평적 조직이고, 위계 조직은 결정권자의 지시가 하부 조직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구체화 되고 결과적으로 각 과업의 담당자들에게 하달되는 수직적 조직이다. 전자에서 매니저의 역할이 직접 담당자들을 관리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라면, 후자에서 매니저는 담당자의 상관이 되어 방향을 제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흔히들 IT 기업에는 '실리콘 밸리형' 역할 조직이 적합하고, 위계 조직은 한국 (혹은 아시아) 스러운 구시대적 유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이 둘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에 따라 각기 장단점을 가지며,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태 경험해본 게임 개발사 중 가장 Role-driven 적인 Supercell의 CEO Ilkka Paananen은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 Netflix 가 발표했던 Culture Deck 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필자도 현재까지 한장의 기획서도 받아보지 못했으며 그 흔한 일정표도 없다. 대 혼돈이 예상되겠지만, 의외로 잘 돌아간다.


역할 조직 모델과 인재상에 대해서는 Netflix 와 Google 의 문화를 잘 정리해놓은 Powerful, Work Rules! 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데, 둘의 공통점을 꼽자면 아래와 같다.


담당자에게 강력한 권한을 주어 창의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한다.

매니저는 적극적으로 이를 서포트한다.

법적, 도덕적 잘못에 대한 책임은 엄격히 묻되 실패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는다.


강력한 권한에 대해 얘기하면 항상 언급되는 것이 그에 걸맞는 책임감이다. 하지만, 책임감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 생겨나지 않는다. 두려움이 어느 정도의 긴장감을 유발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창의력을 심각하게 저해하게 된다. 역량있는 인재에게 적절한 환경을 제공하여 자신의 프로젝트라고 느끼게 만들면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렇다면 게임 회사에는 역할조직이 제일 잘 맞는게 아닐까?



글쎄, 위계 조직의 폐해에 익숙한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역할 조직이 이상적인 모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각 조직 모델은 업의 특성에 따라 장단점을 가진다.


역할 조직은 모든 구성원의 생각을 하나로 묶고 예외 상황을 통제하기 어렵다. 각각의 과정에서 담당자들의 창의성이 개입될수록 조립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다수의 인원이 동일한 규칙 하에 분업과 협업을 해야하는 대량생산 체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 위계 조직은 한번 지시가 하달되면 그것을 다시 주워담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문제점을 보고 받는 것도, 수정안을 다시 전파하는 것도 많은 절차를 거쳐야하며, 각각의 절차는 설득과 이해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민하게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는데 불리한 구조이다.


애플에 비유하자면, 혁신적인 제품을 디자인해야하는 본사에는 역할 조직이 이로울수 있으나 동일한 규격의 부품을 대량 생산해야하는 공장은 위계 조직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은 복합적이다. 개발 초기에는 각 개인의 독립성과 창의성이 빛을 발하는 반면, 개발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대량생산이 필요한 시점이 온다. 그리고 두 과정은 완전히 독립된 전, 후 관계가 아니라 개발 초기부터 유지보수까지 얽히고 섥혀서 이어진다. 



게임 개발사는 공장 하나 쯤은 품고 있어야하는 IT 회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할 조직에 끼워맞췄을 때, 어떤 문제점이 생길까?

아래의 예를 살펴보자.




 Google 의 업무문화를 동경해온 CEO 갑순은 창업 초기부터 함께 해온 을훈, 을희, 을현과 함께 자유롭고 수평적인 회사를 꾸려나간다. 게임 개발이 궤도에 오르며 업무량이 늘어나고, 갑순은 신규 직원을 대거 채용한다. 하지만, 창업 멤버들과는 다르게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신입 직원들을 보며 갑순은 점점 불만이 쌓여간다. 부하직원의 업무 결과가 마음에 안들어 밤늦게까지 수정 작업을 하던 갑순은 결국 폭발하고, 다음 날 전 직원들을 모아놓고 윽박지른다.


"본인 업무라면 책임감있게 마무리 해야지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지긋지긋하네요! 

자유를 줬으면 책임이 따라야하는거 몰라요?!"


최근 입사한 병구는 갑순의 호통을 들으며 어안이 벙벙해졌다. 입사 후 지난 몇 달간 겪은 회사는 정말 혼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업무 중에 툭툭 던지고 가는 임원들의 피드백은 늘 달라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몰랐고, 확정안이라 믿고 밤새 작업한 결과물은 임원들의 술자리 회의 한번에 폐기 되는게 일상이었다. 분명 면접때는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서로 존중하는 문화라고 들었는데, 수평이랑 존중이는 진작에 퇴사한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참견하면서 뭘 알아서 하라는거야. 그럴거면 첨부터 디렉션을 주든가!'


한바탕 잔소리를 들은 후 병구는 집으로 돌아와 구직 사이트에 접속한다. 다음에는 수평적인 문화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체계가 확실한 기업에서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CEO는 직원들이 마법같이 회사의 비젼을 알아채고 한치의 오차없이 업무 수행을 하길 원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확률은 제로에 수렴한다. 직원들은 임원이 아니다. 수 없이 많은 시간동안 회사의 비전에 대해 토론하고 공유해온 임원들과 뒤늦게 입사한 직원들에게 같은 수준의 이해도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각 직원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 또한 힘들어진다. 그러므로 경영인은 어느 시점부터 실무에서 손을 떼고, 기업을 경영하고 문화를 형성하며 이를 직원들에게 전달하는데 집중해야한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직원들을 적소에 배치하고 하나의 목표를 바라보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경영인 스스로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자유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고, 직원들에게 부담스러운 책임감이 아닌 진정한 주인 의식을 갖게 만들 방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면 그 어떤 기업도 존속하기 힘들 것이다.


위의 예시와는 정반대로 위계 조직을 적용시키는 것 또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수의 관리자들이 전권을 쥐고 명령하는 독재형이라고 칭할 수 있을텐데, 하급자들에 대한 지독한 불신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헌신적이고 능력있는 직책자라 해도 게임개발의 모든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과 체력의 물리적 한계 또한 명확하기에 심한 경우 조직의 Key-person 들이 번아웃에 빠져 조직 운영에 큰 리스크를 줄 수도 있다.


또한 하급자의 입장에서도 위계 조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게임 개발은 창작의 영역이다. 타인의 도구로 전락해서 살아가는 삶은 그 어떤 창작자에게도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이는 많은 작업자들이 스스로의 작업물에 대한 애착과 욕심을 잃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의욕 없는 직원들을 열정이 과하게 넘치는 리더가 힘겹게 이끄는 형태가 된다.




지금까지 잘못된 기업 문화가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렇듯 문화는 자칫하면 기업이 성장하는데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추적인 정신과도 같다. 


다음 편에는 과연 어떤 문화가 게임 개발에 적합한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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