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그룹의 신임 팀장 온보딩 SBL(scenario-based-learning) 개발을 위해 썼으나, 사용되지 못한 비운의 시나리오를 풉니다.
팀장이 되면 경제뉴스를 챙겨보는 게 좋다고 해서, 굳이 모 일간지를 구독했다. 그렇게 나는 작년 9월부터 쌓인 신문 더미를 갖게 됐다. 이제 좀 팀장의 자리에 적응된 것 같아 읽어보려고 하자마자, 갑자기 사업부의 방향이 바뀌었다. 사업부가 재편되면서, 그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팀장들이 빛을 발하고, 상대적으로 나의 존재감은 작아졌다. 나는 그간 묵묵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팀이 무의미한 존재가 될 것 같아서 불안하다.
화려하게 외부에서 돈을 벌어오는 팀이 크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뒤에서 잘 보이지 않아도 자기 할 일을 하는 팀의 숨은 노력이 있기 때문에 조직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앞으로 굴러가는 것 아닌가? 우리 팀이 하는 일을 조직 내에서 대체 어떻게 어필해야할까? 우리 팀의 업무 스콥도 바뀌면서 대부분 처음 해보는 업무들이라 속도도 더디고, 가시적인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나서서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그렇게 복잡한 일도 아닌데 지지부진하게 끄는 내가 답답하다.
이러한 변화의 기로에 서니, 그 어느 때보다 나의 한계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렇게 매일매일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곱씹다 보니 자존감도 낮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던 사람은 아니었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이제 한 건 했다.’하는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도 오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또 다른 도전이 찾아온다. 허들 경주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 앞으로 갈수록 점점 뛰어넘어야 하는 허들이 높아져서 버거운 느낌이랄까?
업무가 바뀌게 되는 일이 있다면 주로 두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사업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바뀌었거나, 또는 가깝게 일하는 인력에 변동이 있거나. 나는 이 두 가지 변화를 한 해에 모두 겪었다. 차라리 업무량이 많더라도 그래도 내가 시간만 투자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덜 괴로울텐데, 이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더 불안했다.
결국 아끼는 L책임이 이직하게 되었다며 커피챗을 신청해왔다. 솔직히 우리 팀에서 하는 일이 별로 본인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고, 우리 팀이 하는 일이 일관된 톤 앤 매너에 갇혀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느 팀이나 멋진 결정타를 날리고 싶다.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이야기고, 해보기 전엔 다들 모르는 일 아닌가. 우리 팀의 인력으로는 매번 사태를 일으키고 수습할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정말 인생이 여행이라면 여행사를 고소해야하고, 인생이 영화라면 감독을 고소해야한다. 아니, 작가를 고소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