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그룹의 신임 팀장 온보딩 SBL(scenario-based-learning) 개발을 위해 썼으나, 사용되지 못한 비운의 시나리오를 풉니다.
내가 출근해서 가장 많이 보내는 메시지가 뭘까. 한 팀원이 피드백을 달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9시에 봅시다.’하고 답장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메시지에는 ‘10시에 봅시다.’ 그리고 또 ‘11시에 봅시다.’, 3시에도 보고 5시에도 보고.. 보고 또 보고.. B팀장은 어떻게 하는지 메시지를 보내 물어봤다.
나 : 회의가 너무 많아서 일 할 시간이 없어요.
B팀장 : 나는 그래서 꼭 가야하는 회의 아니면 안 들어가요.
나 : 다 들어가야 하는 회의 같은데...
B팀장 : 그건 알아서 잘 해야죠.
나 : 위에서 시키는 게 너무 많네요.
B팀장 : 할 수 있는 것만 해요.
나 : 그래도 시키는데 다 해야 하지 않나요?
B팀장 : 그건 알아서 잘 해야죠.
‘알잘딱깔센’,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대체 누가 만든 말일까 원망스럽다. 그럼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좀 알려주면 안 되나? 다들 나만 찾는데, 나는 대체 누구를 찾아가야할까.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보통 일정을 탓한다. 이런 일정이라면 난다긴다하는 장인들도 힘들 거다. 오후 3시 정도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고 법적으로 회의를 중단해야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무슨,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보통 많이 마시는 게 커피다.
마지막 회의를 하고 오니 퇴근시간이다. 이런 시간엔 꼭 자신이 한 일을 메일로 툭 던져놓고 가는 팀원이 있다. 자신이 할 일은 다 했고, 나는 자리에 없었고. 그러니 메일로 보냈겠지. 하지만 그럼 나는 언제 퇴근하라는 건가. 합리적인 듯 하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메일에는 ‘죄송랍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안죄송해보이는데.
주체적으로 시간관리를 하지 못하고, 정신없는 일과에 치여 하루가 끝나버리면 허무하다. 나도 우리 팀의 성과를 위해 당장 해야만 하는 일과 아닌 것을 빠르게 가려내는 능력, 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한다는 건 안다. 이렇게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몸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데도 팀원들의 퇴근시간을 먼저 고민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답답하다. 베테랑 팀장들은 퇴근시간이어도 팀원들에게 일을 주고, 밥이고 술이고 사주면서 어르고 달래는 것도 잘한다. 베테랑들의 연륜이 구구절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