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인생책! ⌜번아웃의 종말⌟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구절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기 원하면 책을 구매해서 읽어주세요. 토막토막 발췌한 글이라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참고로 밀리의 서재에도 전자책으로 나와있어요.
들어가는 말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부유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노동을 중심으로 번아웃 문화를 형성해왔다.
나는 번아웃을 일에 대한 기대와 일의 현실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노동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면” 직장과 직장이 가진 측면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상정한다.
번아웃에 관한 일반 대중의 지식이 어느정도인지를 보여줌으로써 노동자가 겪는 스트레스에 대해 회사와 관리자의 책임을 면제해준다.
그 역사적 뿌리는 일이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존엄성과 인격, 그리고 목적의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는 우리의 믿음 속에 단단히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일에 존엄성과 인격을 부여하는 것도, 일에 우리 인생의 목적을 불어넣는 것도 우리다.
1장. 모두가 번아웃에 시달리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이 노동을 이끌어가기 위해 고귀한 이상을 필요로 할 때, 그 이상야말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매일같이 실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그들이 특별히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안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잔혹한 낙관주의Cruel Optimism’가 숨겨져 있었다. 잔혹한 낙관주의란 “당신의 애착을 유발하는 대상이 당신이 애초 가졌던 목표를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때"를 가리킨다.
번아웃을 겪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억지를 써서 업무 시간을 채우는 것뿐이다. 당신은 일하는 좀비나 마찬가지다.
밀레니얼 세대가 거의 모두 번아웃 상태라니,
피곤은 팔리지 않는 반면 번아웃은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번아웃은 시대정신이다.
“친구나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은 고객이나 동료에게 인정받는 일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번아웃은 사람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하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다. 일터가 업무의 인간적 측면을 인정하지 않을 때 번아웃의 위험성은 커지고 뒤따르는 대가는 크다.”
같은 직업과 성별, 연령대의 사람들 대다수가 번아웃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들과 섞이기 위해 당신 역시 마찬가지 증상을 겪는다고 말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번아웃 문화가 가진 모순이다. 번아웃은 부정적인 상태이지만, 수많은 이들이 그 상태를 자신에게 적용하고 싶어 한다.
번아웃이란 “일시적인 괴로움이 아니라 밀레니얼 세대의 조건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초체온이다. 또한 배경음악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삶이다.”
어떤 경험에 이름을 붙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경험을 겪는 이들을 고평가했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우리가 기능하지 못하게 된 것이 이상적인 노동자가 되기 위해 지불한 대가라고 정당화했다.
나는 끝나지 않는 할일 목록의 러닝머신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친구와 연락 주고받기, 병원 진료 예약하기 같은 사소한 할 일 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는 감정에 ‘잡일 마비errand paralysis’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나긴 유전적 트라우마—차라리 유전적 번아웃이라 불러야 하려나?”를 견디어온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는 번아웃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략) “어떤 운동이든 시대든, 번아웃은 이 나라에서 수백년간 흑인들이 꾸준히 경험해온 상태였다.” (중략) ‘닳아버린 검은 배터리’
사실, 클라크는 자신이 번아웃 상태라고 쓰는 동안에도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 (중략) 왜? 그 이유는, 제이지Jay-Z가 가장 잘 표현했듯, 나는 허슬러Hustler니까!
일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일에 지치지 않고 헌신한다는 의미인 번아웃을 겪는다는 말로 어떤 지위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나의 번아웃은 중단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