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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May 03. 2023

운수 좋은 날, 불회사

  있지, 모가지째 툭툭 져내린 동백이 뜰을 선연하게 물들인 저물녘이었어. 막 지기 시작한 노을과 동백은 전생에 무슨 사이였을까. 나눠 가진 붉음이 사이좋게 환하더라.      



  가끔은 친정엄마가 더 불편할 때가 있었어. 형제들 중 유난히 나에게만 인색한 것 같은 우리 세대 특유의 마음이 있어서였을거야. 엄마와 나 사이에 딸아이라도 껴야 조금 편안했는데... 그런 엄마가 가까이 이사 오신 후에는 자연스럽게 모른 척했던 불편함과 편안함이 동시에 불거지더라. 더 자주 얼굴을 보니 그랬겠지.


  제이야. 네가 언젠가 엄마에 대한 불만과 서운함을 털어놨을 때 내가 그랬었지.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자고. 그래야 엄마가 제대로 보인다고, 이해할 수 없었던 사소한 일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이 되는 거라고. 나중에 너는 말했지. 엄마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니 말이 도움이 됐었다고. 네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곰삭았던 것일까. 그 말들은 나 스스로에게도 한 말이었는데 말이야. 겨우 전화나 한두 번씩 하는 오빠들이나 남동생을 더 귀하게  여긴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 오빠들이 닳기라도 할까봐 내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 역시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차곡차곡 쌓여갔지. 어쩌면 그런 나를 숨기고 싶어서, 혹은 내가 엄마한테 훨씬 잘한다는 우월감으로 다른 형제들을 이기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겉으로는 사이좋은 모녀지간이었어.   

   


  어느 해 늦은 가을, 엄마와 나, 딸아이 세 모녀가 불회사에 갔었어. 엄마를 챙기고 손을 잡고 함께 걷는 일은 항상 딸아이 몫이었지. 법당에 들어 20배, 30배... 늘 그렇듯 기다리는 일이나 하는 내가 경내를 한 바퀴 돌았는데도 여전히 절을 하고 있는 엄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열 살쯤 되는 아이 같더라. 아무도 모르게 홀로 작아지고 계셨던 거야. 자식들은, 우리는 내가 커지는 사이 부모의 작아짐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식상하기 짝이 없는 표현일지라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기도로 근심으로 모두 퍼준 마지막이 저렇구나... 제이야. 그날에야 비로소 나도 엄마를 온전히 이해했던 것 같아.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가까이 세 모녀가 사찰을 내려오는 길 호젓하게 서 있던 한 그루 은행나무가 대부분의 노랑을 내려보내고 마지막 이파리들을 날리고 있었어. 마치 아름다웠던 모든 날을 놓은 것 같이. 그날 앙상한 게 더 아름답다는 걸 알았단다. 약속이나 한 듯 넋 놓고 은행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는 홀로 뭉클해지더라. 삼대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라니.       



  엄마가 가시고 나는 몇 번 더 가을 불회사를 찾았는데 그때와 같은 은행나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그날의 엄마를, 은행나무를 추억하며 동백길을 배회했단다. 그 어떤 후회나 노력도 되돌릴 수 없는 바람은 모가지 째 떨어진 동백꽃 같았지만 엄마도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꽃길을 잠시나마 함께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얼거렸단다.

  

  동백꽃과 은행잎 사이 붉음에서 노랑으로 건너가는 그 길을 너도 나도 건너가고 있는 지금, 우리 서로 앙상해져 가고 있는 지금.

  올 가을에는 미리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랑 함께라면 더욱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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