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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Jun 13. 2023

의도적으로 느려지기

제주를 훔치다 14.

느리게 걷자 마음먹었으나 급한 일을 보러 가는 사람처럼 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습관이었다. 처음 이 길에 섰을 때는 감동과 설렘, 쉼이 주는 충만함이랄까 오롯이 나만 느낄 수 있는 감성에 젖어 20킬로미터의 걸음을 마친 내가 한없이 뿌듯해지곤 했다. 그런데 패스포트에 구간 스탬프가 한 칸 한 칸 채워지면서 고질병 같은 급한 성질이 서서히 튀어나오고 있었다. 영락없이 모든 구간을 어서 빨리 걸어 치우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사람 같았다. 당연히 감동이나 설렘 같은 물컹한 감정은 바다를 봐도 숲을 봐도 그저 그럴 수밖에. 마음정비가 필요했다. 의도적으로 느려지기! 그런데도 빨라지는 마음과 걸음을 순간순간 붙잡아야 했다. 끈이 있어  마음과 발목을 묶어둘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빨리, 빨리’의 습관은 어느 순간부터 쌓이기 시작했을까. 내 선택과 삶에 책임을 져야 하는 어느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사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는 하지 못한 공부를 더해서 빨리 학력을 쌓고 싶었고, 결혼을 했을 때는 세운 적도 없이 목표가 되어버린 집 마련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아이를 았을 때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직책을 맡았을 때는 일 못한다는 소리가 죽기보다 싫어서 완벽하게 제시간 안에 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쌓인 이력들이 악셀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직진형 인간으로 살아가게 했다. 주변의 일들도 나를 중심으로 내 속도대로 돌아야 했다. 일의 계획도, 마무리도 정한 기간 내에 마치지 못하면 불편함과 초조함이 나를 옥죄어 왔다. 그렇게 나를, 주변 사람들을 재촉하고 질책했다. 하지만 학위를 는 일도, 아이들의 성적도, 허리띠를 조인 집 마련도 계획대로 달성할 수 없었다.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 뻔한 세상의 속도를 인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애초에 계획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때가 있다는 말이 쓴 약같이 마음을 훑는다.  

하루 네, 다섯 시간씩 산책을 했다는 철학자 니체도, 모든 글은 걷는 자의 발끝에서 나온다고 한 은유작가도 걷기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산책의 몇 배 속로 걷는 습관은 있는 능력마저 뒤꿈치로 빠져나가 버릴 태세다. 그러니 느려지자. 책망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날 세우지 말자. 늦잠도 허용하고 늦은 발걸음도 괜찮다고 토닥거리자.    



중산간으로 계속되는 농로를 느리게 필름을 돌리듯이 걷는다. 매일 자라야 하는 양이 정해진 듯 적당하게 커가는 농작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길섶 무질서하게 핀 꽃과도 참을성 있게 눈을 맞춘다. 씨앗을 품 물기를 말리고 있는 파 종자 곁에 오래 서 어도 본다. 그래야만 원래 속도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듯이. 석가탄신일 행사가 끝난 선운정사의 정자에 앉아 텅 빈 공간에 가득한 바람을 본다. 잔치가 끝난 후의 휴식.  잠깐 잘못 든 길도 원래 길 인양 리본까지 되돌아온다.  


납읍리에서 우연히 만난 플리마켓을 천천히 돌아본다. 플리마켓을 운영하는 그치들은 의자에 몸을 묻고 손님이 오든 가든 호객도 하지 않고 느긋하다. 젊은이들이 제주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서로서로 챙기고 안부를 전하는 모습이 자못 부럽기도 하다.   

느리게 걸을 때 보이는 것들


에라, 이왕 늦은 거 장구잡이도 북잡이 없지만 혼자 노래하며 어깨춤을 추고 추임새를 넣어 본다. 행여 누가 볼까 신경도 끈다. 옥수수밭 너머 바다가 가까이 다가와 흥을 돋는데 어느 틈에 굽이를 돌아 보이지 않는 딸애에게 전화를 해 발걸음을 불러 세운다. 오늘 빠르지 않아도 급하게 살아야 할 날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어쨌든 처방이 조금쯤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늘어진 마음도 걸음도 애드벌룬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2킬로미터를 남긴 지점 높은 습도만큼이나 몸은 무겁다. 성질대로 무질러 가면 금방 도착할 것만 같은 직진 본능을 억눌러 리본을 따라 걷는다. 그러니 리본은 그저 흩날리라고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유와 목적을 다 가지고 있다. 이리 단정한 돌담길을 어디서 만날 것인가. 오래된 카세트에 클래식 테이프를 넣어 돌려놓고 가을 파 씨앗을 심고 있는 저 여인네를 어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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