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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wan Jul 16. 2024

광고

5. 프로세스

많은 분야가 그렇듯 과정이 결과를 만듭니다.

광고를 만드는 프로세스, 즉 컨셉을 잡고, Creative를 내고, 광고주에 제안을 하고, 수정을 하고, PPM을 하고, 촬영을 하고 후반작업과 광고주 시사, 온에어를 하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광고물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갈림길은 많습니다. 대행사 내부의 프로세스는 우선 젖혀두고 외부와의 연결고리 두 점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하나는 주님이신 광고주, 다른 한쪽은 제작 협력사입니다.


광고는 결국 광고주가 만든다 말합니다. 하나의 광고를 두고 '저 광고 내가 만들었어'라 말하는 사람은 족히 백 명을 넘기지만, 누가 뭐래도 광고의 주인은 광고주입니다. 국내외 다수의 광고제에서도 수상자는 광고주이지 대행사가 아닙니다. 좋은 크리에이트브의 광고물에 주는 상을 광고주가 받습니다. 좋은 광고도 광고주의 가이드와 의사결정에 기반하기에, 광고의 퀄리티는 결국 광고주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함도 과장은 아닙니다.


광고 시안 제안 1차 PT의 자리입니다. 기획안과 크리에이티브를 당당히 펼친 대행사는 광고주의 반응을 살핍니다. 1차는 보통 광고주 실무진의 피드백을 받습니다. 나름 똑똑한 피드백도, 말 같지도 않은 피드백도, 같이 얽히고설킵니다. 2차 제안 PT의 자리, 대행사는 마음이 작아졌습니다. 1차 보고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한 수정안을 광고주 임원진에 펼치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원래 생각했던 것이 맞았을지, 광고주 실무진과 임원진은 사전 소통이 되었을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임원진도 각자의 생각을 말합니다. 취향이 난무하는 가운데 최종 보고를 위한 방향성을 타줌에 대행사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제 최종 보고 자리입니다. 대행사는 다시 당당해집니다. 광고주 임원진과 실무진의 지지를 업고, 멋진 PT로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표는 끝판왕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본인은 어디로 튀어도 되기 때문이죠. 한 번에 OK가 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다시 할 수도 있습니다.

자. 통과가 되었다고 칩시다. 질문. 통과된 최종안은 대행사가 처음 제안했던 안에서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요. 아마 열에 아홉은 개였는데 고양이가 되어있고, 나머지 하나는 개는 갠데, 개라고 알려줘야 개 같은 뭐 그런 걸 겁니다.


광고안 보고는 의사결정의 자리입니다. 의사결정의 관여자와 절차가 많아질수록 광고안의 방향은 자연히 틀어집니다. TV 광고건 디지털 콘텐츠건 가용 가능한 시간과 미디어의 지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광고는 한정된 시간/지면의 조건 하에 메시지의 임팩트를 만드는 일입니다. 더하기보다 뺄수록 강력해집니다. 광고안 의사결정의 프로세스 상 관여자와 절차가 많을수록 빼기보단 더해지기가 쉽습니다. 덕지덕지, 배는 산으로 갑니다.

광고주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소한의 절차로, 대행사와 광고안을 협의하길 권합니다. 대행사의 일을 보다 쉽게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소한의 인원이어야 깊이 있는 협의가 가능합니다. 최소한의 절차여야 광고주의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며, 임팩트 있는 결과물을 추려낼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인원은 직급 순은 아닙니다. 마케팅 부서 담당자들로 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광고 캠페인의 중심인 제품/서비스 책임자, 광고/홍보 책임자, CEO를 기본으로 하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연관 부서의 책임자를 추가하면 됩니다. 제품/서비스의 책임자라 해도 해당 부서의 실무, 임원이 모두 참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담당자’가 아닌 ‘책임자’라 함은, 해당 프로젝트를 실제 실행하고, 실무적 결정을 내리고, 일정 부분 결과에 책임을 지는 직급을 뜻합니다. 통상적인 마케팅/광고 담당 부서와 그 보고 라인을 따르는 인원구성, 절차를 거둬내고, 실제 제품과 서비스, 광고의 집행을 책임지는 직원과 CEO가 하나의 팀으로, 광고안을 평가하고 논의하고 가이드를 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입니다.  

최소한의 절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차를 줄임은 한 자리에서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고 다시 방향성을 결정함으로써 소통의 투명성을 확보함이 목적입니다. 단계적 절차는 보고 과정의 불투명성이 수반되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결과를 만듭니다.


광고 제작의 업무를 대행사가 모두 커버하진 못합니다. (종합)광고대행사는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이유로 실제 광고의 제작 업무는 모두 외주화 하였습니다. TV광고라면 감독을 중심에 두고, 프로덕션, 2D/3D, 사운드/녹음실 등 다양한 회사의 인력이 붙습니다. 같은 크리에이티브안이라도 어느 감독이, 어느 덕션이, 어느 후반작업 업체가 함께 했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퀄리티는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그래서 대행사의 CD들은 뜨는 감독을 두고 싸웁니다. 그 감독들은 촬영 스탭과 후반작업 업체의 시간을 두고 또 싸우죠. 좋은 퀄리티는 결국 사람이 만드니 소수의 잘하는 인력/회사로 수요는 몰립니다.

문제는 모두가 똑같이 ‘그때’ 잘한다는 감독, 업체에게 오망불망 줄을 선다는 점입니다. 광고주의 제품/서비스는 실로 다양합니다. 1천 원짜리 제과부터 수백억 원의 부동산까지, 동네 편의점에서 찾을 수 있는 제품부터 물리적 실체가 없는 서비스까지를 망라합니다. 각각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페르소나, 아이덴티티가 다르고 그를 담아낼 광고의 컨셉과 아이디어도 제각각입니다. 이 모두를 ‘그때’ 잘 나간다는 감독, 업체가 똑같이 잘할 거라 믿는 건 바보 같은 일입니다. 소위 잘 나간다는 감독과 업체는 대개 특정 광고가 빵 하고 떴기 때문입니다. 특정 브랜드의 광고가 마침 모델의 매력을 끗발 나게 뽑아냈고, 마침 광고의 때깔이 기깔나게 좋았고, 또 마침 제품의 매출마저 올라주었던(광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때마침‘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일이 몰리고 작업량이 많아지니 그중 몇몇은 좋은 평을 받을 수 있고, 그게 다시 평판이 되어 선순환을 만듭니다. (물론 능력 있는 감독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협력사는 대행사가 갖추지 못한 업무 영역을, 부족한 역량을 그들의 전문성으로 보완을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행사의 제작팀, CD는 각자의 색깔이 있습니다. 잘하는 영역, 역량 있는 분야가 있고 다소 아쉬운, 모자란 부분도 있습니다. 카피 출신의 CD라면 아트의 역량이 아쉬울 수 있고, 소비재를 가볍게 잘 풀었던 CD라면 금융 광고의 디테일을 챙기기 쉽지 않습니다. 그 부족함과 모자란 역량의 영역에서 경험이 많은, 잘해왔던 감독과 업체가 있습니다. 협력사 파트너는 그렇게 찾아갔으면 합니다.

간혹 나와 잘 맞아서, 편해서, 시간을 맞춰줘서, 지금 잘 나가서, 업체를 선정하는 제작팀을 봅니다. 잘 맞고 편하고 시간을 맞춰주는 곳이라면 갑과 을의 관계가 고착화되어 있을 터라, 협력사는 수동적입니다. 주어진 일을 하지만 주도하며 새로움을 더해주긴 어렵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업체라면 입장이 바뀝니다. 자칫 대행사가 끌려가며 크리에이티브의 중심을 잡지 못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와 대행사의 지난한 과정도, 대행사와 협력사의 밀고 당기는 밀당도, 좋은 광고라는 결과물을 위한 엄연한 프로세스입니다. 권한은 내려놓고 책임은 더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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