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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화 Freshorange Jan 02. 2024

이미 떠나버린 2023에게

추억으로 넘어간 2023년, 안녕

 글쓰기를 게을리 하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다. 방금 2024년 새해 첫 시작의 다짐을 스스로 하는 글을 쓰다보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2023년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보낸 것이 너무도 아쉬운 생각이 든다. 2023년은 내게 아주 특별한 해였는데 말이다. 짧게라도 2023년을 추억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미안할 것 같다.

-2023년에게-

 이제는 내 인생의 추억이라는 공간으로 사라진 2023년아

어제 너와의 작별인사도 없이 황망하게 너를 보내고 오늘 1이 더해진 2024년을 맞으니 뭔가를 놓쳐 버린 듯한 아쉬움으로 하루가 어수선했다. 뭘해도 안정감이 없이 둥둥 뜬 듯한 기분을 느끼며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는데 오늘이 가기전에 올 한해를 어떻게 보낼 지 남들 다 하는 '새해 다짐'의 글을 쓰다 보니 왜 인지 이유를 알겠더구나. 볼 일 보러 갔다가 그냥 나온 듯한 찜찜함이 하루 종일 머리에 맴돌았는데 어제 짧게라도 너와의 이별식을 치뤘어야 하는데 아무 의식도 치뤄주지 못하고 너를 보냈던게 그 이유였어. 순서가 바뀌었지만 지금이라도 너를 소환하여 너와 나만의 짧은 이별식을 마쳐야만 이미 시작한 새해를 정말 '새롭게' 시작 할 수 있을 것 같아. 

 2023년, 너는 나에게 중요한 해였어. 인생을 연극의 1막, 2막 처럼 나눌 수 있다면 나에게 인생 2막의 시작은 작년, 그러니까 너 2023년이었지. 

 1989년에 큰 사명감 없이 시작했던 중등 영어교사의 삶을 33년 6개월간 지속하고 마침표를 찍은 해였거든. '큰 사명감 없이'라고 했다고 너무 화내지는 마. 예전에는, 아마도 7~80년대였겠지. 그때는 사실 교사라는 직없이 그리 매력적인 직업은 아니어서 교사를 양성하는 각 대학의 사범대의 등록금이 다른 단과대보다 절반이나 적었어. 교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적다 보니 실력있는 학생들의 지원을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지. 등록금을 조금 내는 대신 졸업하면 4년 동안은 의무적으로 교사생활을 해야 하는 조건이었고.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교사를 선택하지 않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면 4년 동안 내지 않은 절반을 한번에 내야 한다고 들었어. 내가 알기로는 성적은 어느 정도 되지만 대학을 가기는 힘든 가난한 집 자녀들이 사범대학을 많이 선택했고 나도 그 중의 하나였지. 물론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발령이 나지 않아 발령 적체가 심해서 발령 적체를 해결해달라고 데모를 시작하던 때이긴 했어. 우여곡절 끝에 임용고사가 시작되었고 임용고사 시작 직전에 무시험으로 교사가 된 마지막 세대였지. 우리는.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사명감도 생기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서는 성직이기도 하다는 깨달음으로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정년도 좀 남아 있고 내가 근무하던 학교는 요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힘든 교사 생활'과는 무관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명퇴를 결심하고 미련 없이 그만 두게 되었어. 

 방학이 있긴 했지만 30년 넘게 매일 출근하던 습관을 하루 아침에 멈추려니 첨엔 참 어색하더라고. 시간이 막 남아 도는 것 같고 6시면 저절로 눈이 떠지고 처음엔 싱숭생숭 괜히 그만 뒀나 싶었지만 바로 적응했어. 특히 방학이나 휴가 때가 아닌 평일을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하면서 한가한 인천공항을 처음으로 경험한것이 기억에 남네. 

 새로운 취미 생활도 시작했지. 한번만 체험 해보라는 후배의 권유로 말타러 갔다가 한번 타보고 너무나 흥미진진해서 승마레슨을 받기 시작했어. 젊었을때부터의 로망이기도 해서 바로 시작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조련된 말은 탈 수 있게 되었어. 오며 가며 왕복 두시간, 말타는 시간 40~50분. 별일 없으면 일주일에 두 번 가는데 말타러 가는 시간이 기다려져. 

 새로 시작한 취미생활이 또 있어. 셔플 댄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50대 중반의 조그만 여성이 셔플 댄스스텝을 매일 올리는 것을 보고 흥미가 생겼고 줌으로 수업을 한다고 해서 덜컥 등록하고 영접을 하게 되었지. 폴짝폴짝 뛰는 스텝들이 많아서 쉽지는 않았지만 이 나이에 춤바람이 나다니 신기할 뿐이야. 오프라인으로 같이 모여서 춤추는 기회가 생기면 대전이고 군산이고 열 일 제쳐놓고 가는 걸 보면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거지? 

 완전 퇴직은 아니지만 거의 퇴직자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남편은 내가 퇴직을 하고 나니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어 인생말년에 친구처럼 잘 지내 볼려고 했다가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더 바쁜 것을 보고 입이 좀 나와 있어. 점점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늘어난다고. 

 네가 작년에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새 식구를 맞이하게 해 준 거지. 나는 딸 만 셋이 있는데 혼기가 되어도 결혼 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여 '결혼 안하면 어때, 요즘 세상에' 하며 엄청 쿨한 엄마인 척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 걱정했거든. 그래도 짝이 있는 것이 좋은데 하면서. 그런데 1년 6개월 전 쯤 둘째 딸이 선물처럼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고 작년 9월에 부부가 되었어. 한동안 주말부부라 결혼 하고도 나랑 지냈는데 너가 떠나는 날 내 딸도 드디어 제 둥지로 날아갔어. 남들은 섭섭해서 어쩌냐고 걱정해주는데 나는 왜 이리 홀가분한지 서운한 척도 안했어. 딸은 좀 섭섭했을라나? 내가 포커페이스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드러났을 것 같아. 그래도 할 수 없지. 좋은 것은 좋은 거니까. 그래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하고 단 둘이 사는 생활을 시작한 것도 역시 네가 준 선물이지 선물이 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겠지만. 

 이렇게 짧게마나 너랑 보냈던 시간을 추억해보니 떠나 보낸 네가 앞으로도 계속 그리울 것 같아. 시간이 갈수로 많은 것을 잊어 버리겠지만 가끔씩은 너를 떠올리며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 볼게. 내가 별 큰 탈 없이 지내게 된다면 절반은 네 덕분일거야. 그만큼 너는 나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줬거든.

늦었지만 잘 가고 가끔씩 내 소환에 응해주길 바랄게. adió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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