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숨겨야 해
할머니와 살면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엄마 없는 티를 내면 안 되는 것. (그것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오래된 미션이기도 하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엄마가 없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들키지 말라는 뜻이라 니라 우리 삼 남매의 행동으로 하여금 엄마가 없는 아 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하지 말라는 것.
인사를 잘하고, 행실을 똑바로 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안된다. 말썽을 피워도 안된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엄마 없는 티가 난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무서웠다.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도, 우리를 때릴 때마다 커지는 눈도, 때릴 때마다 앞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것도,
이만큼 아프게 때릴 거라고 협박하는 듯 공중으로 한껏 치켜드는 큰 손도.
할머니 말만 잘 들으면 할머니는 때리지 않을 거야.
엄마처럼 우릴 떠나지도 않을 거야.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는 양말빠는 법을 배웠다.
빨래판에 물에 적신 양말을 올려두고 빨랫비누를 바르고 바락바락.
하얀 거품이 검어지면 헹구고 또 치대라.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구고 그 물은 그냥 버리지 말고 바닥 빗자루질 한 번 하고 부어라.
양말을 제대로 빨지 않으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두꺼운 손이 날아왔다.
몇 번을 가르쳐도 모르냐며 매를 맞았지만 소리 내서 울면 더 맞을까 봐 무서워 입술을 꽉 물고 소릴 참았다.
미련하게 참는 법 밖에 몰랐던 나와는 달리 한 대만 때 려도 백 대를 맞은 것 마냥
자지러지게 울던 언니는 더 이상 양말 빨기를 시키지 않으셨다.
그 이후 언니 양 말도 남동생의 양말도 손이 야무진 나의 몫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