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배우는 거지

대학원 13주차

by TWOG

A과장님 "곧 기말고사인거 아니에요?"

나 "...맞아요..ㅠㅠ"

B과장님 "어?? 학교다니고 있어요?"

나 "..네 이번 학기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B과장님 "뭐 배우는데요?"

나 "경제학이요..."

A, B과장님 "잘했어, 잘했어."

나 "아.. 근데 잘못 생각한 거 같아요. 저에겐 경제적 사고방식이 없는 거 같아요"

B과장님 "아니야~~ 그러니까 공부하는거지~"


뭔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정말 솔직하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순수하게 공부가 하고 싶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경력을 더해갈수록 내 논리적 사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식의 차이일 수도 있고 습관의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래도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을 지나다 보면 어느정도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그 다음 이유는 주변 영향을 때문이다.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우리 업계에는 다양한 석박 공부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학위가 갖고 싶었냐. 그건 정말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학위에는 정말 관심이 없다. 다만, 공부를 더 한다라는 결심을 하기까지 진입장벽이 상당히 낮아진 것은 맞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공부를 더 하고 있으니까 괜히 나도 해보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게 느껴지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공부하고 싶냐고 물으면 참 답할 게 없었다. 막상 학교를 저 돈주고 더 다녀보려하니 그래도 미래에 쓸모가 있었으면 좋겠고, 내 경력과 진로에 관련이 있었으면 좋겠고, 공부하는데 재밌으면서 성장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어쨌든 회사와 병행이 가능한 학교와 과정이었으면 좋겠고. 뭐 그런 것들을 하나둘 따지다보니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온전히 현장을 경험하면 길이 정해질지도 모르겠다 라는 마음으로 그냥 해외근무 파견을 가버린거다.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현장에서 별의별일을 다 겪었지만 여전히 무엇을 전공하고 싶은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에 관심이 더 가는지, 무엇에 관심이 안가는지, 십년 후 이십년 후에는 그래도 어떤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을지는 좀 더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었다. 전공을 당장 정해봐라고 하면 할 답은 없었지만 몇달동안 고민하면서 가지치기를 하는데는 분명한 기준들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갑자기 업무에 대한 회의감이 강하게 왔던 어느날, 정말 충동적으로 대학원을 신청해버렸고, 그렇게 9월에 입학하여 수업을 들은지도 벌써 13주차가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3분기에 하던 일이 꽤 무게가 있었던지라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공부를 함께 해내기가 어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관련 자료도 더 보고 싶고, 예습과 복습도 하고 싶고, 질문할 거리도 고민해서 가져가고 싶은데 난생처음 본경적인 경제학 수업을 들으며 개념만 주워가기에도 바쁘다.


하지만 스불재(스스로 불러운 재앙이라는 뜻으로, 대학원을 지원할 적에 많은 분들이 내게 외쳤던 말이다)라고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굳이 시험을 의식하지 않으면 수업을 듣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교수님과 학우들의 사고를 따라가 보는 것, 매일 매일 나에게 일 말고 새로운 삶의 루틴이 생기는 것, 캠퍼스를 걸으며 교정을 누리는 것, 대학가를 지나가며 청춘을 맛보는 것 모두 아직도 새롭게 느껴진다.


물론 학교를 다니기로 하면서 지불한 기회비용들은 꽤 크다. 우선 직장인들의 위한 특수 대학원의 학비는 참 비싼 편이고(내가 다니는 학교는 또 유독 더 비싸다), 몰랐지만 한국과 서울에는 주말마다 근사한 이벤트들이 즐비해 있는데 그것도 포기해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릇처럼 다니던 여행도 방학때가 아닌이상 어렵게 됐다. 다시 해외로 나가기 전에 어떻게든 연애도 해보고 주말마다 국내를 누려보겠다 결심한 것 치고는 그냥 학교에 투자해야 하는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시간과 체력이 막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동력을 계속해서 받는건 참 귀한 일이다.

학습의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도 이 시점에 필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배우기로 한거니까 말이다.


P.S. 게다가 올해 나와 함께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

다들 같은 업계에 있으면 죄다 다른 전공 공부하고 해외출장 많은 직업이라

비싼 학비 비행기에 함께 태워보내는 기분도 남들보다 자주 느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함께 이 고통을 나눌 수 있어서, 그래도 같은 의지를 갖고 있어서 동질감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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