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세요.
주말 동안에 친구와 연희동을 걸어다녔다. 친구가 좋아한다던 비스킷 스튜디오라는 곳을 갔다. 한편으로는 사장님이 여행다니면서 찍은 사진이나 적은 글을 토대로 만든 문구류를 판매하는 문구점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기록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누적되고 있는 공간 자체로 존재하는 곳이기도 했다. 스튜디오에는 사람들이 적어내려간 글들이 책의 형태로도, 벽에 붙은 장식으로도 존재했다. 글의 내용은 낙서이기도 했고, 그림이기도 했으며, 익명성을 빌려 토로하고 있는 고민상담이나 참회의 글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하는 조언이자 자기에게 하는 다짐들이 쓰인 진지한 이야기, 장난스러운 메모, 형태를 굳이 갖추지 않고 마구 적어내려간 의식의 흐름 따위가 담겨 있었다. 잘 적힌 글-아마 글씨도 예쁘고 내용도 그럴싸한-은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져갈 수 있게 인쇄된 종이로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그때 한 글귀가 친구와 나를 사로잡아 각자 하나씩 집어왔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세요.
첫 글귀부터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요즘 주변에서 좋아하는 것을 잃어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무엇을 좋아했더라. 이게 내가 좋아하는게 맞았나.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무언가가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부럽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법적으로) 청년이라고 불리울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긴 했구나를 문득 실감할 때가 바로 이렇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정마저 식어버린 이들을 볼 때다. 10대, 20대를 지내면서는 각자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공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연예인,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드라마,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취미 같은 것들을 공유-때로는 같이 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서로 이랬네 저랬네 떠들며-하던 시간을 오래도록 보냈었다. 하지만 요즘엔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을 계속 좋아하는 것조차 힘에 부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정신력이고, 좋아하는 것을 해내는 것은 체력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조차 노력 해야하는 시기가 되버린거다. 그렇게 사람들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그 자체를 어려워한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무언가를 좋아할 때 순수함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해놓고 막상 그 좋아함의 대가를 원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도 나를 그만큼 좋아하길, 어떤 일을 좋아서 했다면 그 성과가 내게 돌아오길 기대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만큼 얻는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력과 체력을 쪼개가며 쓰는 현대인들은 좋아함에도 효율을 계산하고 좋아하는 것의 값을 따진다. 그저 무언가를 좋아해서 얻는 순수한 즐거움과 차마 계산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들은 그저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게 마치 사치스러운 것처럼 취급된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렇게 비싸져만 간다. 마치 아무나 누릴수 있는 것이 아닌 것마냥.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세요. 라는 말이 그래서 참 와닿았다. 뻔해보이는 저 말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서. 좋아하던 것도 힘들어서, 이제는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만둔다는 사람들을 다시 붙잡고 물어보는 거다. 정말 그냥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좋아한만큼 정말 무엇을 꼭 얻어내야 하겠냐고.
그렇게 오늘, 좋아하는 글쓰기를 계속 좋아하기 위해, 한번 더 실천하고자 간만에 글을 쓴다.
추위 날씨에 뒤둥구는 낙엽을 보며 괜시리 시니컬해진 마음을 다시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본다. 여행하는 것이 좋고, 운전하는 것이 좋고, 음악을 듣는 것이 좋고, 그래서 공연보는 것이 좋고, 내가 모르는 새로운 영역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좋고,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재밌어 하며, 그래서 새로운 공부를 하는 것도 흥미로워 하는 나.
출퇴근 길에 책읽는 시간이 좋고, 셔틀버스에서 포근히 잠자는 것도 좋고, 귀여운 것들로 장식되어있는 사무실 내 자리가 좋고, 사무실에 존경할만한 동료들이 있는 좋은 나.
따듯한 정기장판에 등을 대고 얼굴은 시원하게 두는 겨울이 좋고, 주말에는 찬바람을 맞더라도 친구와 걷는게 좋은 나. 글 한자 더 써보겠다고 이 밤에 그래도 한자한자 남겨보는 시간 조차 소중하고 좋은 나.를 한번 더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