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그렇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생애에 대해 가족들과 나누면서 새삼 그 삶이 지금의 우리 세대까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를 추모하는 글을 쓰면서도 느꼈지만 할머니는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을 지키는 순수한 마음, 힘들어도 항상 감사하는 굳은 정신 같은 것들을 물려주신 것 같다.
할머니의 삶을 내 안에 어떠한 언어로든 남기려고 하는 과정에서 새삼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또 난 어떤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되새겨 보았다. 나에 대해 사람들이 표현해주었던 다양한 언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나의 인생의 어느 페이지 마다 유난히 굵은 글씨로 남은 여러 이름들이 도두 보이기도 했다.
오늘은 그 여러 이름중 하나를 먼저 받아써보려 한다. 나에게 귀감이 되었던 누군가들의 모습은 분명 미래에 이 글을 펼쳐볼 나에게 다시금 귀감이 될수도, 어쩌다가 이 글을 마주한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새삼스럽게 새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첫번째를 장식할 사람은 바로 Kang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성인이 된 후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면 아마 난 Kang을 일순위로 꼽을 것 같다. 나보다 세살 밖에 많지 않지 않고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이지만 나는 내가 많이 보고 배운 어른 중 한명이라고 당당히 Kang을 앞세울 수 있다. 이 말을 Kang이 정말 싫어할 것 같지만.
Kang은 내가 27살의 나이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처음 만난 사수였다. 공식적인 입사 연도로 치면 큰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의 경험으로 따지면 훨씬 나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경력을 쌓아왔다. Kang은 사수로서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많이 보여주였다.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나를 가르치기보다는 정말 그냥 보여줌으로써 배우게 해준 게 커서 그렇다.
나는 수습기간 동안 마치 아기새처럼 Kang에게 붙어있었다. 회의를 같이 들어가서 그가 하는 말과 태도를 훔쳐보았고, 모르겠는 것들을 붙잡고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며 귀찮게 굴기도 했다. 그런 Kang에게 내가 배운 것들은 크게 두 가지인데 바로 일과 삶이었다. 일은 재미없는 이야기니까 넘어가도록 하고 Kang이 알려주진 않았지만 내가 인상깊게 배워버린 삶에 대해 풀어보겠다.
먼저 Kang은 다채롭게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Kang은 거의 모두에게 친절하지만 모두와 친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범주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겐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전한다.
사회인이 되기 전, 유난히 짠순이 기질로 자라온 성장 배경과 불안한 취준생활 때문에 돈 아끼는데 굉장히 촉을 세우고 살았다. 돈도 써본 사람들이 쓴다고, 아끼는 게 최우선이던 나는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돈을 쓰는 습관이 없었기에 이건 사회인이 되고 나서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애정은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거 아니냐며 자기 합리화도 자주 했다. 그런 나의 못난 기질을 깨준 것이 Kang이었다.
Kang은 자신의 마음을 말과 행동으로도 충분히 표해주지만 그 마음을 선물로도 멋지게 전할 줄 아는 성의와 세심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냥 어디를 놀라갔다가 마침 생각이 나서 샀다는 조그마한 선물들, 나도 기억나지 않게 스치듯 얘기한 것들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것들, 본인이 써봤더니 좋았어서 공유해주는 것들 하나하나가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생일이니까, 어쩌구 데이니까 하는 것 없이도 전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전해주었다. 물건에는 단순히 애정만 묻어있지 않았다. 이걸 고르기까지의 고민, 시간, 노력, 상황들이 묻어있었다. 마치 언어를 글로 남겨야 눈에 보이듯 마음이 물건과 함께 오니 만져지는 듯 했다.
나는 이런 Kang의 습관이 정말 인상 깊었다. 유난히 취준생활은 내가 더 공부를 잘하고 내가 저 면접을 통과하고 내가 오늘 이걸 더 해내고 하면서 나에게 매몰되었던 시간이었다. Kang은 그런 내게 주변을 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난 Kang을 흉내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누군가가 스치듯 얘기한 무언가를 기억하고 챙겨주거나, 언뜻 보였던 제품을 기억하고 선물한다거나, 걔가 고양이를 좋아했는지 기린을 좋아했는데 새를 좋아했는데 하면서 관련된 물건이 보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고 괜히 하나 더 챙겨본다거나 하는 것을 흉내내고 있다.
이상하게 별 게 아닌 듯 하면서도 남에게 관심을 더 두는 그 마음조각 하나가 나뿐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저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선물을 주는 데 내가 더 기쁜 그런 느낌.
그러나 Kang이 물건만으로 정성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꼭 강조하고 싶다. 왜냐하면 Kang의 저런 모습은 평소 그의 말하는 방식이 덧붙어서 더 빛이나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낮고 말이 약간 빠르며 굳이 안써도 괜찮은 단어를 덧붙이는 경우가 잦은 나와 달리 Kang의 목소리는 그렇게 낮지도 높지도 않고, 말의 속도가 굉장히 일정하여 전달력이 매우 높다. 특히 선택하는 단어도 고급진 편이다.
Kang이 말하는 걸 듣다보면 이 대화에 얼마나 집중하면서 참여하고 있는지, 지금 스스로 하고 있는 말이 얼마나 자기 자신의 언어로 잘 소화된 생각이자 의견인지, 얼마나 듣는 이의 특징을 고려하여 발언의 범위나 내용을 세심하게 조정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신뢰감이나 배려심이 듣는 이를 따듯하게 데워준다.
이건 Kang 처럼 타고난 성정과 평소의 습관이 상당히 조화로워야 하기에 흉내내려 하진 않는다. 그냥 Kang이 이렇게 대화하는 걸 듣다보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괜히 내가 교양을 쌓는 듯 하기도 하고, 복잡하던 내 생각들이 같이 차분하게 정리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듣기를 즐거워 한다.
어쩌면 회사에서 붙어다닌 세월이 길어져서 아주 날것의 대화를 하던 내가 조금 정제된 업무 톤을 갖게 되었다면 그래도 그건 Kang의 영향 덕분일 수 있다.
지금도 내 옆에는 Kang이 선물해준 샤워가운이 걸려있다. 4년전 해외 근무가 정해지고 생필품을 준비하던 시절 내 물건 리스트를 슥 보더니 빠져있던 것들로 채워놓았던 굿바이 선물 상자를 건내받고 멍할 정도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남을 챙긴다 하더라도 그 세심함의 차원이 남달라서 놀랍기도, 너무 벅차기도 했었다.
그제도 Kang의 집에서 다른 동료와 함께 셋이 놀며 수많은 대화가 오갔는데, 그때도 Kang은 일상, 업무, 동료들과의 관계, 앞으로의 기대 등 여러 주제에 대하여 상당히 고민을 거친 정제된 생각들을 그 생각의 근거와 함께 공유해주곤 했다. 함께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하는 듯한 기분을 주는 시간들을 즐거이 보내고 왔다.
나의 사회생활의 사수가 Kang이었던 것은
입사하면서 얻은 천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