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관계에서 멀어지기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유독 외롭게 느껴지는 밤이 있다.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는 순간들. 우리는 모두 이런 순간들을 겪어본 적이 있지 않은가.
퇴근 후 텅 빈 집으로 돌아와 혼자 먹는 저녁이 견디기 힘들어서 문득 연락을 이어가지 않았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저녁을 준비하고 미디어 콘텐츠를 틀어두었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애꿎은 휴대폰만 자꾸 만지작거렸다. 이미지와 영상들을 의미 없이 넘기다 보니 어느새 시간만 흘러가 있었다.
카페에 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저런 관계가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관계의 존재 여부가 아닌, 그 관계의 질이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도 의미 없는 농담과 비판으로 시간을 때우다 헤어진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건 그래서다.
실존주의 철학자 파울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이며, 이를 피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더 큰 고립을 낳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가슴에 와닿은 건, 상처받은 기억이 선명한데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독이 되는 줄 알면서도 그런 관계들을 떠올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의미 없는 노력을 기울였던 모임들을 나오고 나서도, 가끔은 다시 섞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소속감이라는 달콤한 독이 그리워서일까.
나쁜 관계는 마치 독성 화학 물질처럼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는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있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매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나는 내 시간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 이후로 나는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방식의 관계가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지기 위해 조금씩 노력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서점에서 다양한 책들을 가볍게 읽어보고, 흥미로운 내용이 있으면 노력을 들여 공부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명상을 시작해 보면서 내 생각과 감정을 마주해 보려 노력하고 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이런 시간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진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관계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지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이 말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정신적 성숙의 중요한 신호다"라는 말을 믿어보려 한다. 건강한 관계는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성장시키고 지지하기 위해 맺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서 있어야 한다. 진정한 치유는 외로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외로움이 몰아치는 밤,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나는 산책을 나간다. 수많은 불빛 속에서 누군가도 나처럼 외로움과 씨름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때로는 혼자이며, 그래도 괜찮다.